▶ ■ 오대원 목사 LA집회
▶ 예수전도단·안디옥연구소 설립 후 한인에 물려줘
지난 6월 세계한인선교대회에 참석한 오대원 목사(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김대준 목사(가운데), 오엘렌 사모(맨 왼쪽).
소명은 때론 혈육의 정보다 강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하려는 그리스도인에게 사명감은 생명의 의미가 된다. 머나 먼 낯선 땅에서 평생을 보내는 선교사 가운데는 민족과 문화를 뛰어넘어 모든 삶을 헌신하는 사역자도 많다.
미국인 백인 목회자 오대원 목사의 한국 사랑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팔십이 넘도록 오 목사는 한국과 미국에서 오직 한인을 향한 복음의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그의 미국 이름 데이빗 로스(David E. Ross)를 아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그는 어디서나 오대원 목사라는 한국 이름으로 통하고 모든 사역이 이뤄진다.
제주도에 본부를 둔 예수전도단은 한국 교회의 선교 첨병이다. 그 씨앗을 뿌리고 뿌리를 내려 거목이 되도록 온 영혼과 육신을 바친 이가 오 목사다. 어느 때는 오해를 사고, 어느 시절에는 질시를 받으면서도 오 목사와 오엘렌 사모는 한길을 달려오고 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주는 평화와 하나님의 영광만이 이들의 관심일 뿐이다.
LA비전교회 담임 김대준 목사가 중국 베이징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시절 오대원 목사를 북경비전교회의 부흥집회 강사로 초청한 적이 있다. 북경대학교와 청화대학교 등 유명대학의 학생들이 교인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김 목사는 한마디로 가난한 교회였다고 회상했다.
“사례비는커녕 여행 경비 전부를 오 목사님이 부담하셨어요. 비행기 표부터 식사비는 물론 숙소까지 스스로 해결하셨습니다. ‘선교지에 있는 교회인데 짐이 될 수 없다’는 거였죠. 오히려 ‘어떻게 교회를 꾸려가느냐’고 염려를 해 주셨습니다.”
LA비전교회는 오 목사를 초청해 오는 21일부터 23일까지 가을 부흥집회를 연다. 21일에는 오후 8시, 22일은 오전 6시와 오후 7시, 23일에는 오전 8시와 10시30분 집회가 시작된다. 주일 예배 이후에는 격의 없이 질문과 대답을 나누는 대화의 시간도 마련된다.
오 목사는 이번에도 가장 싼 항공편을 본인이 마련해 참석한다. 교회는 어떻게든 그를 대접할 마음이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지난 6월 아주사대학교에서 세계한인선교대회가 열렸을 때도 저희는 오 목사님의 소탈함에 다시 한 번 감탄했어요. 강의실 앞에 미리 오셔서 기다리다 복도 바닥에 주저앉아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셨어요. 처음 오 목사님을 보는 사람들은 ‘누군데 저러나’ 깜짝 놀랐죠.”
오대원 목사는 지난달 자신이 시애틀에 창립한 YWAM AIIM 안디옥연구소의 새로운 책임자로 피터 양 선교사를 세웠다. 피와 땀으로 세우고 키운 사역의 중심을 아무 조건 없이 한인 후배 사역자에게 넘긴 것이다. 예수전도단을 창립하고도 홀연히 미국으로 건너 온 전철을 소리 없이 이어가는 셈이다.
오 목사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여든 한 살이니까 당연히 넘겨줘야지 백 살까지 하면 큰 일”이라며 털털 웃었다. 그러면서 “개척자는 한계가 있다”며 “다음 세대가 등장하도록 도와주고 밀어줘야죠”라고 말했다. 또 “더 일찍 물러서야 했는데 피터 양 목사가 때가 되길 기다렸다”고 덧붙였다. 오 목사는 “손을 떼고 나니까 안디옥연구소가 더 활발해진 것 같다”면서도 “이런 일이 너무 크게 다뤄지면 한인교회에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김대원 목사는 오 목사가 한국교회를 위해 사역한 게 큰 축복이라고 말했다. 또 한인 교계에도 이와 같은 청빈과 빈손의 개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북경에서 사거리의 빨간불이 들어 와서 오 목사님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냥 막 길을 건너는 거예요. ‘왜들 저러나’하고 생각하는데 오 목사님은 ‘살려면 같이 가야죠’하고 따라 가시더군요. 큰 깨달음이 있었어요. 아예 선교지에 대한 사랑의 차원이 달랐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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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원 종교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