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Q 라디오’

2016-10-08 (토) 한영국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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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에서 ‘EQ 라디오’를 개발했다고 한다. 종래의 라디오 같이 생긴 기계가 테이블에 앉아서 사람에게 무선 시그널을 보내고, 그 사람에게서 반사되어 오는 데이터를 분석해 감정 상태를 알아내는 장치다. 여지껏 사람의 감정을 읽는 기계는 대부분 표정의 변화를 읽었지만, 이 라디오는 심장박동이나 호흡 같은 좀 더 입증이 가능한 생리적 데이터를 이용한다. 그래서 그런지 정확도가 마이크로 소프트의 동종 기계 ‘Emotion API’보다 높은 87%의 성공률을 보인다고 한다.

MIT에서 만든 홍보용 유투브에서 보면 이 기기를 보안 비디오처럼 천장에 매달아 놓고 방 안에 있는 사람의 희로애락을 측정한다. 그래서 우울증이나 심장 이상을 조기 발견 할 수도 있고, 또는 TV를 보면서 어느 장면에서 청중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아내 영화산업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거짓말 탐지기가 진화하겠다는 생각도 들고, 고해(告解)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리라는 예상도 가능해 진다.

나아가서 얼짱, 몸짱 만으로는모자라 이런 기기를 압도하는 감정성형이 필요한 시대가 올 지도 모르겠다. 현재까지의 기준으로는자신의 심장 박동이나 호흡까지 자유자재로 조종할 수 있는 강심장의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 몬스터지만, 모두 다 몬스터가 되면 그것도 정상으로 간주될 테니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는 걸까?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도 이런 세계와 연관된다. 도리안은 순수와 지성이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열아홉의 청년. 바질이라는 화가가 영육의 조화된 아름다움의 전형으로 그의 초상화를 그리는데, 이 그림을 보고 도리안 자신의 마음도 변한다. 이제 나르시스의 연못을 발견했으니 순수는 사라지고, 자연히 건방기가 발동하고, 젊음의 유지가 절체절명의 인생 목표가 된다. 행인지 불행인지 도리안의 젊음은 세월이 가도 그대로 유지되고, 그의 초상화가 그 대신 나이를 먹는다. 거기다 인생의 온갖 쾌락을 추구하는 도리안 대신 그 쾌락의 추한 흔적도 초상화의 몫이다. 그는 점차 지극히 아름답고 순수한 얼굴 뒤에서 차갑고 잔인하고 감정이 고갈된 인간으로 변해 간다. EQ 라디오가 있어 이런 인간형의 심리를 측정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소설로 봐서는 EQ 라디오도 도리안의 진짜 심상을 보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완벽하게 아름다운 외모에 완벽하게 악한 내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완벽한 강심장은 EQ라디오를 우회할 것이다.

그의 초상화를 그린 바질의 말이 이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다.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한 추상적인 감각을 잃어버렸다.”고 그는 말한다. 현대에는 보이는 것, 가질 수 있는 것의 가치가 최고지만, 이를 넘어서 보이지 않는 것, 가질 수 없는 것의 추상적인 가치를 인정하고 소중히 하지 않으면 우리는 도리안의 길을 가게 될지도 모른다. EQ라디오로 사람들의 감정 상태가 우리의 가시권 안으로 들어온다고 치자. 속고 속이는 일은 줄어들겠지만, 더 크게 속고 더 크게 속일 것이다. 인간의 추상적 영역을 밝히려는 시도가 꼭 인생에 득으로 작용할 것 같지는 않다.

<한영국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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