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헬로우’와 ‘여보세요’

2016-09-27 (화) 노려 웨체스터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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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젊은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혹시 스마트 폰에 뜬 낯선 번호를 보고 전화를 받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사람이 시니어 한인 공동체를 지도하고 있으며 한국말을 잘 한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기에 한국말로 메시지를 남겨 놓을 참이었다.

벨이 두세 번 울리자 상대방은 “헬로우.”했고 나는 당연히 “여보세요.”라고 했다. 그런데 또 ‘헬로우’를 한다. 잘 안 들리나 다시 분명하게 큰 소리로 ‘여보세요.’를 하자 저쪽에서 계속 ‘헬로우’로 답을 한다. 그래서 ‘저는 뉴욕한국일보의 노려라고 하는데요.’ 라고 해도 상대방은 마치 못 알아들은 듯 한 번 더 ‘헬로우?’한다.

할 수 없이 영어로 나를 소개하고 당신이 OOO 씨냐고 물었더니 저 쪽에서 “스피킹.” 한다. 아, 난감했다. 더듬거리면서 용건을 말하기 시작하자 그가 갑자기 유창한 한국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지금 제가 밖에 있는데요. 한 시간 쯤 후에 전화 드리겠습니다.’했다. 전화를 끊으며 기분이 묘했다. 처음에 분명하게 몇 번이나 ‘여보세요.’라고 했는데, 왜 ‘헬로우’를 계속했을까.


이민 초기에는 ‘따르릉’ 집 전화가 울리면 일단 긴장을 했다. 헬로우를 할 것인가 여보세요를 할 것인가…… 우선 ‘헬로우’ 해 놓고는 상대방이 ‘쏼라 쏼라’ 영어를 시작하면 알아듣지를 못해 당황했었다. 물론 한국 사람이 전화를 걸었을 때 내가 헬로우한다고 미국 사람인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차차 핸드폰이 발달하고 집 전화에도 누가 전화 하는지가 나타나기 편해졌다. 하지만 ‘헬로우’와 ‘여보세요’로 전전긍긍하기는 전지전능한 스마트 폰을 쓰는 요즘에도 마찬가지다. 잘 알지 못하는 젊은 한국 사람에게 전화를 할 때마다, 이 사람이 한국어를 할 줄 아는지 영어 밖에 모르는지가 은근히 문제가 된다.

언어장벽은 더 높아지기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1.5세 쯤 되는 한인 종교지도자와의 전화로 떨떠름한 기분이 든 것이 오로지 언어장벽의 문제였을까?

한 시간 후에 전화하겠다던 그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 다음 날, 내가 다시 전화를 했을 때 저쪽에서는 또 ‘헬로우’를 했고 나는 또 ‘여보세요.’를 하면서 다시 헬로우 소리가 들리기 전에 곧장 ‘안녕하세요. 어제 전화했던 한국일보 웨체스터 담당....’라고 말했다.

그는 유창하다 못해 네이티브 스피커처럼 한국말을 했으며, 자기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냐면서 전화번호를 내게 알려준 사람을 나무라면서 ‘신문에 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저는 싫습니다.’라고 말했다. 아하, 처음서부터 그저 ‘헬로우’와 ‘여보세요.’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여보세요.’ 하는 나에게 굳이 ‘헬로우’를 고집하고, 1시간 후에 전화하겠다던 약속을 어길 때 그 인격을 알아보지 못했음을 후회했다. 아니면, ‘헬로우’를 계속할 때 당장에 영어로 대응을 못한, 즉 미국에서 30년 넘게 살면서도 아직도 ‘헬로우’에 갈등을 하는 내 자신을 후회했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노려 웨체스터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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