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란지교(芝蘭之交)를 꿈꾸며!’

2016-09-26 (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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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많은 인연을 맺는다. 그중에는 얼굴만 아는 사이가 있다. 조금 가까운 사람도 있다. 속내를 터놓는 아주 가까운 관계도 있다. 죽고 못 사는 이들도 있다. 물론, 가장 가까운 가족과 친구들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랑보다 우정이란 말이 미덥게 여겨진다. 친구란 단어만 생각해도 가슴이 찡해진다. 서로 마음이 통하는 친구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친구가 많다고 여겼지만 막상 필요한 순간엔 떠올리지 못한다. ‘넓은 관계’가 ‘깊은 관계’로 직결되지 않는다. 홍수에 마실 물 없는 격이고, 군중 속의 고독인 셈이다. 그래서 인생에서 가장 어렵고 중요한 것이 진정한 친구를 얻는 것이라 했나보다.

친구란 어떤 존재인가? 서로가 우정을 나누는 사이다. 잘못이 있으면 충고를 해준다. 덮어주고 이해도 한다. 허물없이 바라볼 수 있다. 떨어져 있으면 허전하다. 다른 사람과 있으면 질투난다. 아픔은 반으로 기쁨은 두 배로 나눈다.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한다. 슬픈 땐 울어주고 힘들 땐 의지할 수 있다. 나의 소중한 모든 것을 주고 싶어 한다. 목숨을 나눌 수 있다고 여긴다. 친구답게 서로를 대하는 것이 바로 친구다.


인간관계의 시작인 친구간의 우정에 대해서는 수많은 고사 성어를 통해 우리를 깨우치고 있다. 흔히 친구의 우정을 말할 때 죽마고우(竹馬故友)를 가장 많이 쓴다. 어릴 적 대나무를 다리 사이에 끼우고 마치 말 탄 것처럼 노는 놀이에서 비롯된 말이다. 어릴 적 같이 논 고향친구란 의미다.

친구를 위해선 자기 목을 내 놓을 수 있을 정도의 사귐을 의미하는 문경지교(刎頸之交)는 참으로 부럽다 못해 감탄할 표현이다. 물과 물고기의 사이처럼 떨어질 수 없는 사이는 수어지교(水魚之交)라 한다. 유비가 제갈량을 얻고 기뻐서 했다는 말로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사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막역지우(莫逆之友)는 마음이 맞아 서로 거스르는 일이 없이 친밀한 벗이란 뜻이다.

친구 사이의 허물없는 교제는 관포지교(管鮑之交), 두 사람이 마음을 합쳐 협력하지 못하면 못할 일이 없다는 단금지교(斷金之交), 서로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이해하는 참된 벗을 일컫는 지음지교(知音至交), 난초와 지초의 은은한 향기를 지닌 채 사귀는 유형을 지란지교(芝蘭之交)라 한다.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재산이 바로 ‘참된 벗’임을 깨닫게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친구가 많다고 생각하며 산다. 전 세계를 연결하는 SNS 덕분에 많은 지인들과 현재와 과거의 친구들과 소식과 근황까지도 알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직접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친구를 만드는 일에 열중한다. 가까운 사람은 소홀히 하고 멀리 있는 사람을 찾는 우를 범하며 산다. 지금 집중할 일은 ‘친구 찾기’가 아니라 친구가 되는 일이다. 아쉬울 때만 찾는 그런 친구 말고 서로 항상 걱정하고, 생각하며 숨김없는 진정한 친구 말이다.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 질 수 있겠는가. 영원히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진실한 친구가 필요하다. 그런 친구라면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상관없는 법이다. 이젠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친구가 되면 어떨까.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그런 친구가 되면 더욱 좋지 않겠는가.

지란지교는 지초와 난초가 만나 아름다운 향기를 내뿜는 사귐이다. 그런 진정한 친구들이 만난 자리엔 아름다운 향기가 난다. 향기는 휴식을 주고, 치유가 되며, 희망을 준다.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잊혀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진정한 친구는 그 모습 그대로 내 곁에 머문다. 서로 마음이 통하는 진정한 친구를 그리며 ‘지란지교를 꿈꾸는’ 이유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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