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부가 원할까?

2016-07-29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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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프랑스 북부 루앙시 인근 생테티엔 뒤 루브래에서 10Km 떨어진 마을 다르느탈에서 한 남자아기가 태어났다. 이름은 자크 아멜. 조용하고 사려 깊게 자라난 소년은 평생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기로 결심하고 성직에 들어가 28세에 사제서품을 받는다.

2008년 사제 서임 50주년을 맞기도 한 아멜 신부는 생테티엔에서 35년간을 살면서 신중하고도 온화한 태도로 지역사회에서 존경받아왔다. 10년 전 은퇴를 하였으나 보좌 신부로 봉사하면서 주임사제가 바쁘면 대신 미사를 집전했다.

백발인 머리가 거의 다 빠지고 얼굴에는 주름의 골이 깊어도 누구에게나 겸손하고 친절함을 평생 실천했다. 또 혼자 있는 자들은 그들이 누구든 보살필 것을 당부하며 인간의 가치를 존중했다.


이 프랑스 최고령 자크 아멜(86)신부가 지난 26일(현지시간) 오전 9시45분 인구 3만명의 작은 도시, 자그마한 성당에 난입한 IS 조직원에게 참수를 당했다. 미사 중 들어온 19세의 IS 조직원 2명은 흉기로 신부의 목에 자상을 입힌 후 성당을 빠져나오다 인질사건 신고로 출동한 경찰 기동대에 의해 모두 사살됐다. 연금을 받고 편한 노후를 보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멜 신부는 “마지막 숨을 다할 때까지 일하겠다”고 평소 말하던 그대로 미사 도중 순교했다.

프랑스에서는 작년 11월 파리 도심 연쇄테러, 지난 14일 니스 트럭 테러에 이어 이번에 신성한 성당 안에서까지 테러가 일어나고 있다. 이는 자유와 사랑을 노래하는 프랑스의 이미지와 더불어 아프리카와 중동 등 많은 지역을 식민통치했던 프랑스의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특히 프랑스의 무슬림 인구는 500만명으로 유럽 최대 규모인데다가 이들 대다수가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 출신의 극빈층이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는 인터넷과 각종 선전물에 자신들과 싸우는 유럽국가 국제동맹군을 십자군 동맹이라 한다.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소프트 타겟에 이어 기독교를 테러 타겟으로 삼은 것은 ‘잔인하고 무자비한’ 급진수니파 IS에 대한 비난이 이슬람 세계에서도 거세지자 아예 이슬람을 등에 업고 성전(聖戰)으로 빌미 삼겠다는 의도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십자군 전쟁은 서기 11세기부터 14세기에 걸쳐 200년간 8차례 실시되었었다. 회교도에 빼앗긴 성지 예루살렘 탈환을 위해 유럽 그리스도 교회가 주도한 원정 전쟁이었다. 전쟁 결과 교황권이 쇠퇴하며 교회 대분열, 왕권 강화, 봉건 영주 세력 약화를 가져왔지만 가장 고통 받고 힘들었던 것은 일반 민중이었다. 군인들의 전리품 노획과 약탈 아래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되었고 재산을 잃었다.

이번 성당 테러로 프랑스 우파에선 ‘당장 종교전쟁을 촉발 할 것‘이란 말도 나오고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종교 전쟁 속에 온전히 나라와 민족, 가족을 보전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전세계가 미쳐 돌아가는 종교 분쟁 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집과 삶의 터전을 잃을 것이다. 과연 이 가슴아픈 역사를 다시 되풀이하는 피의 보복을 아멜 신부가 원할까?

우선 아멜 신부는 더 이상 자신에게 관심이 쏟아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삶의 대부분을 보낸 프랑스 북서부지역 조용하고도 소박한 마을이 일상의 평화를 하루빨리 되찾길 바랄 것이다. 그래서 가족, 친구와 웃고 사랑하며 각자의 삶을 즐기길 원할 것이다.

루앙 대교구장 도미키느 르브랑 대주교는 ‘가톨릭교의 무기는 기도와 형제애’라면서 “젊은이는 폭력에 물들지 말고 사랑의 문명을 전하는 사도가 되라”고 한다.

불과 두달 전인 5월 23일 프란치스코 교황과 이슬람 수니파 최고지도자 셰이크 아프메드 알타예브가 바티칸 사도궁전에서 만나 포옹과 가벼운 뺨키스를 나누었다. 두 사람은 각 종교가 처한 어려움을 말하며 평화와 공존의 확산을 위해 노력하자고 다짐했었다.

자살 폭탄테러가 난무하는 이 분쟁의 시기에 평화의 싹을 튀우기란 쉽지 않다. 자신의 종교에 충실하면서 타종교에도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종교간의 이해와 협력이 필요한 때이다. 이럴 때일수록 기독교와 이슬람 지도자는 16년만이 아니라 수시로 만나 의견을 나누어야 한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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