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아시안 유권자들은 전반적으로 민주당 성향을 갖고 있다. 설문조사를 해 보면 민주당 지지자 수가 공화당 지지자를 상당한 차이로 앞선다. 2014년 중간 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한 조사에서 아시안 유권자들 가운데 42%가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응답했으며 28%는 공화당 지지자라고 밝혔다. 한인들의 경우 공화당 지지가 36%로 다른 아시안들 보다 약간 높았다. 하지만 민주당 지지율 또한 48%로 아시안 평균을 상회했다.
그런데 느낌으로 와 닿는 한인사회의 이념지형은 이런 조사결과와 상당한 거리가 있다. 설문에서 나타난 민주 48, 공화 36의 비율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이다. 기고 등을 통해 신문사에 접수되는 독자들의 정치적 견해는 대부분 보수색이 짙다.
특히 한국에서 안보관련 이슈가 터졌을 때 이곳 미주에서 큰소리를 내는 것은 거의 다 보수적인 한인들이다. 자신들의 생각을 드러내는 데 한층 더 적극적이다. 반면 중도적이거나 진보적 생각을 갖고 있는 다수의 한인들은 대개 침묵한다.
미주뿐 아니라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한 연구기관에서 한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이념지형을 조사한 결과 자신을 진보 혹은 중도 진보라 응답한 사람이 56%, 중도 보수 혹은 보수라고 밝힌 사람은 44%였다. 그러나 우리 귀에 들려오는 주장들은 보수가 압도적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가치에 대한 확신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표현하는 일에 더욱 적극적이다.
표현에 적극적인 사람들은 당연히 선거 때 투표장으로 나갈 확률도 더 높다. 따라서 선거결과를 정확히 점칠 수 있게 하는 것은 설문 이념지형이 아니라 피부로 느끼게 되는 체감 이념지형이다. 이것은 곧 행동지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브렉시트 투표를 앞두고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EU 잔류로 전망됐음에도 탈퇴로 결론이 나자 여론조사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여론조사 방식과 분석에 하자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뒤바뀐 결과를 전부 잘못된 여론조사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여론조사는 설문일 뿐 투표 당일 유권자들의 행동까지 정확히 예측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영국의 노인들이 브렉시트에 몰표를 준 것으로 나타나자 젊은층은 노인들을 비난하고 나섰다. 하지만 연령별 투표율을 보면 이런 비난을 수긍하기 힘들다. 65세 이상 노인들 가운데는 85% 이상이 투표를 한 반면 18~24세 젊은이들의 투표율은 35%에 불과했다.
개표 결과는 탈퇴 52, 반대 48이었다. 단 4%포인트 차이로 전 세계에 충격파를 미친 영국의 EU 탈퇴가 결정된 것이다. 만약 잔류 여론이 압도적이었던 젊은층의 절반만 투표장에 나갔어도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니 브렉시트가 가결된 것은 노인들이 아니라 순전히 젊은이 자신들의 탓이라고 해야 옳다. 영국의 진로와 미래를 좌우한 것은 젊은이들 머릿속 생각이 아니라 노인들의 행동이었다.
정치란 결국 머릿수 싸움이 아니던가. 정치는 고상한 담론과 이론이 아닌 행동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높은 아이큐나 유토피아적인 생각이 아니라 자리를 박차고 투표장으로 향하는 결단과 행동이다. 그리고 이런 싸움의 패자는 보통 게으른 진보들이다.
머릿속에만 들어있을 뿐 행동이 뒷받침되지 않는 이상은 공허하다. 설문 이념지형과 체감 이념지형 간의 간극을 메우지 못하는 한, 많은 이들이 꿈꾸는 좀 더 합리적인 사회와 상식이 지배하는 나라는 요원한 과제일 뿐이다. 이번 브렉시트는 이런 사실을 확실하게 일깨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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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