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벤치

2016-06-02 (목) 09:40:52 이태희/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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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나는 동네에서 멀지않은 산으로 등산을 간다. 너무 가파르지 않아서 조금 빨리 걸으면 숨이 가빠지는 나에게는 아주 적당한 코스다.

가다보면 강아지가 너무 힘들어 한다고 안고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세상이 참 달라졌다는 생각도 하고, 공원 건물 옆에 천막 천으로 덮어놓은 것이 무엇일까 궁금해 하기도하며, 천천히 올라간다.

콜드워터 캐년 공원까지 올라가면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좋다. 시원하게 얼굴을 스치는 바람은 아직도 한없이 날아다니는 내 마음을 가라앉혀 주고, 내려다보이는 도시와 산의 풍경은 답답했던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저 아래 경치를 구경하기 좋도록 놓여 진 벤치들이다.


나는 벤치를 볼 때마다 ‘좁은 문’에 나오는 제롬과 알리사가 앉던 벤치를 생각한다. ‘좁은 문’ 첫 장에 성경의 누가복음 13장 24절이 나온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사랑하는 사이였던 제롬과 알리사는 나중에 헤어진다. 그들이 앉았던 벤치는 아마도 오래된 것이라서 나무가 회색빛으로 변했고 힘줄이 튀어나왔을 것 같은, 할머니의 쪼글쪼글한 손처럼 정겹게 느껴지는 벤치일 거라고 생각한다.

콜드워터 캐년 공원에는 제롬과 알리사의 벤치는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시인 루미가 앉았었던 것 같은 벤치가 있다. 벤치에는 루미의 시 한 구절이 남겨져있다. “Beyond the ideas of right and wrong, there is a field / I will meet you there(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너를 만나리)”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 아니더라도, 알퐁스 도데의 ‘별’이 아니더라도, 나는 어려서 밤하늘의 별을 보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러면서 내 집을 새로 지으면 침대에 누어서 밤하늘의 별을 볼 수 있도록 설계하리라 했다.

공원 건물 옆, 천막 천으로 덮여있던 것이 어느 날 천이 걷히면서 내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그것은 벤치였다. 제롬과 알리사가 앉았었을 것 같은 벤치도 아니고 루미가 앉았다 사라진 벤치도 아니었다.

현대식으로 아주 매력 있게 디자인된 별이 뜬 벤치(사진)였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마주앉아 바둑을 둘 법도 한 벤치였다. 낮에만 뜨는 별빛아래서….

<이태희/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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