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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 칼럼] 기억상실증이라는 것

2016-06-01 (수) 김 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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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드라마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에 ‘개연성’도 들어간다. 그 안의 스토리는 물론, 심지어 그것을 둘러싼 간단한 배경이 내 주변 현실에 조금만 일치해도 흥미를 갖게 된다. 그런데 아예 그 전체가 내 인생 얘기라면 더 열광할 것이다. 나도 그래서 지나치게 허구적인 공상과학 유의 영화는 잘 안 본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스토리 전개이면서 격렬한 액션이 가미되면 금상첨화다. 개연성이 있을수록 더 재미있다는 얘기다.

한때 지구촌을 강타했던 한류 드라마들이 갈수록 식상해지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한국 드라마에서 개연성의 확률이 낮은 소재를 전체 내용을 유지하는 중심 주제로 삼는 게 다반사다. 픽션에서 극적인 재미를 주는 게 ‘반전’이 아니던가. 반전은 독자나 시청자 입장에서 볼 때 자연스러워야 더 흥미롭다. 너무 과도하게 비틀거나, 비약이 심한 소재를 끌어들여 반전을 불러일으키는 건 억지에 가깝다. 그럼 한국 드라마에서 억지스럽지만 여전히 애용되고 있는 소재들에는 어떤 게 있을까? 그 중 내가 뽑은 두 가지가 있다. ‘엿듣기’와 ‘기억상실증’이다.

우리의 삶 속에서 정말로 중요한 상황에서 엿듣는 일은 거의 흔치 않다. 물론 그토록 대단한 비밀들을 집집마다 갖고 있지도 않지만 말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이 장면이 너무 잦다. 기억상실증은 더 가관이다. 이것 역시 감초처럼 등장하는 소재다. 특히 한국드라마에서는 거의 전용물에 가깝다. 이야기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반전의 물꼬를 아주 후딱, 아주 쉽게 터버리는, 한물갔지만 용이한 수법이 바로 이 기억상실증이다. 둘 다 현실적인 비개연성을 픽션 상의 개연성으로 지나치게 확대시킨 것들이다.


내 주변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어도, 오십여 평생 기억상실증에 걸린 이를 만나 본 적이 없다(치매환자는 예외다). 그런데도 드라마 속 유명인사들 안엔 이 증세에 걸린 사람을 어찌 그리도 찾기 쉬운지. 그래선지, 나도 기억상실증에 한 번 걸려 봤으면 하는 로맨틱한 상상에 빠져보곤 했다.

어릴 때 병원에 입원 한 번 해봤으면 하는 마음처럼 말이다. 예쁜 간호원 누나들이 온종일 돌봐주는 기쁨을 누리고 싶어, 가족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이 꽃 사들고 찾아오는 걸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아, 다들 병원 입원의 꿈을 꾸지 않았던가. 기억상실증에 대한 낭만적 염원도 그와 비슷한 것이다.

해서, 상상해 봤다. 내가 만약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면…. 굳이 장점 하나를 찾으라면, 살면서 정말 잊고 싶은 게 있는데 그걸 쉽게 잊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하는 것이다. 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 상처와 학대, 그 아픔을 내게 던져준 인물들, 그로 인한 깊은 절망과 좌절의 추억들, 이런 것들을 일거에 내 의식에서 다 내다버릴 수 있으니 참 좋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단점들이 훨씬 더 많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한 예만 들자면, 일단 사는 데 애를 많이 먹을 것 같다.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기억을 다 잃어버려도 주변에서 돌봐주는 사람들이 많다. 사랑하는 연인이 잘 지켜준다. 아니면, 그가 넘치는 재력을 가진 이여서 하루 종일 꼼짝 안 하고 엉뚱한 짓을 해도 살아가는 데 끄떡없다. 그런데 만약 내가 그렇게 되었다면 당장 먹고사는 일 자체가 과연 가능할까 싶다.

갈수록 느끼는 건, 기억 문제에 있어서 사람들은 대부분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잘 기억하지 못하고, 꼭 잊어버려도 될 것은 선명히 기억한다는 사실. 돈 갚아야 할 것은 잊으면서도, 돈 꿔준 건 확실히 기억한다. 내가 받은 은혜는 잘 잊으나, 내가 받았던 상처는 맘속에 꼭꼭 새겨놓는다. 우리 안의 기억 시스템 작동이 주로 그런 쪽으로 진행되더라는 뜻이다. 반면 고마운 것도 있다. 교인들이 내 설교의 모든 내용을 다 기억한다면 매주 설교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적당한 망각이 목회자로 하여금 반복적인 얘기를 계속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에게 드라마 유의 기억상실증은 필요 없다. 그러나 적당한 기억 감퇴는 굳이 염려 안 해도 될 것 같다. 다만, 기억할 걸 기억하고, 잊어도 되는 것은 잊어버리는 습관만 있으면 된다. 성경이 존재하는 이유도 그렇다. 줄 은혜는 잊고 받을 은혜만 기억하는 이기적인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무게를 각인시켜주기 위함이 성경이 존재하는 목적이다. 그런데 성경을 읽고 있는 난 지금 무엇을 잊고 무엇을 기억하는가?

<김 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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