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버지의 이름으로

2016-05-31 (화) 09:22:59 박찬효/ FDA 약품 심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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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설렘, 감사와 기쁨의 연속이었던 고교졸업 50주년 기념행사가 한국에서 그 막을 내렸다. 꿈같이 감미롭고, 즐거웠던 기억의 조각들은 이제 추억이 되어 눈앞에 삼삼하다.

특별히 나의 가슴에 깊은 감명을 남긴 일은 ‘아버지의 이름으로’라는 책의 저자 K동창을 만나 잠시나마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일이다.

21년 전, K형이 49살 때 그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무서운 비극이 일어났다. 1995년 여름,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당시 16세(고1)의 멋있고 자랑스러운 아들 D군이 스스로 투신해 목숨을 끊은 것이다. 준수한 용모에 성품도 좋았고, 공부와 운동 등 매사에 적극적이고 뛰어나 반장까지 하던 아들이었다.


당시 그는 홍콩에서 5년 여 상사 주재원으로 일하다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웬일인지 명랑하던 아들의 표정이 어둡고 점점 말이 없어지는 것을 감지했지만, 아들을 신뢰하고 또한 감정의 변화가 심한 사춘기에 흔히 있는 일이라 좀 지나면 나아지겠거니 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 즈음 K는 회사의 다음 사장으로 내정되고, 그날도 북경 출장 중에 그런 기막힌 일이 터진 것이다. 나중 알게 된 사실은 소위 ‘킹카’인 아들은 여학생 문제로 그 학교의 선배 5명의 타깃이 되어 정신적, 신체적으로 심한 폭력을 당해온 것이었다.

사랑하는 아들을 비통한 오열과 함께 검푸른 속초 바다에 띄워 보낼 때, 독실한 신자인 K도 그때만큼은 하나님을 원망했다고 고백한다. 충실한 남편, 사랑하는 아버지로서 소위 출세를 위해 밤낮으로 뛰었건만, 아들을 잃고 나서는 그 모든 것이 참으로 부질없고 허무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속죄하는 심정으로, 그리고 다시는 이 땅에 자신이 겪은 것 같은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게 하겠다고 결심하고, 과감하게 22년간의 직장에서 사직하고 바로 청소년을 위한 공익법인 ‘청예단’을 설립했다.

조그마한 오피스텔에 책상 몇 개와 서너 명의 직원으로 학교폭력의 실체를 세상에 알리고 다른 가정에 도움을 주고자 ‘학교폭력 예방재단’으로 신청했지만, 신성한 학교에 폭력이 없는데 평지풍파를 만든다는 당국의 어처구니없는 반대로 그 명칭을 ‘청소년 폭력 예방재단’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다. 청예단은 그렇게 정부의 냉담과 비협조 속에 참으로 어렵게 출범했다. 이외에도 운영비 부족, 법률과 제도의 미비 등으로 어려움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한다.

그러한 중에도 사무실에 찾아와 “청예단 덕택에 우리 아들/딸을 살렸다”고 눈물로 감사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청예단의 진정성과 중요성을 아는 분들이 따뜻한 성원을 보내 주었기에 활동을 중단할 수는 없었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정권이 바뀌면서, 이제는 학교폭력이 국가의 주요과제로 책정되어, 청예단은 전국에 직원 330명 그리고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을 두고 일하고 있으니, 그 필요성을 세상이 입증해 준 셈이다.


아들을 잃은 참담한 비극 후 온갖 희생을 무릅쓰고 헌신함으로써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이끌어낸 K형에게 사회는 ‘한국 피스 메이커 상’, 국민훈장 동백장, 아산 대상 등으로 격려했다. K형은 그럴 때마다 먼저 간 아들에게 조금은 용서를 받는 기분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최근 한 언론사에서 실시한 “다시 만나고 싶은 나눔 人”에 최다 득표(전체의 37%)를 하여 인터뷰한 기사를 읽었다. 본인의 재산(서초동 소재 지상 7층, 지하 2층 건물)을 청예단에 기부한 K는 공익법인의 핵심은 첫째 진정성, 둘째 전문성, 그리고 셋째 신뢰성(투명성)이라고 말한다.

극한 상황에서 자신을 내던져 불태워버림으로써 오히려 죽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기적을 실천하는 K형에게 많은 분들의 관심과 후원이 있기를 기대한다.

<박찬효/ FDA 약품 심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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