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시대 명장들의 집념이 응축 ‘현대의 문화재’

2016-05-27 (금) <진천=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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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이 42.73m 거대한 3층 목탑 ‘보탑사 통일대탑’

우리시대 명장들의 집념이 응축 ‘현대의 문화재’

보탑사 통일대탑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3층까지 올라갈 수 있게 만든 목탑이다. 우리시대 문화재급 한옥 전문가들의 기술력이 응축 된 작품이다

“나에게 전통건축가로서의 긍지를 갖게 한 작품을 딱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보탑사라고 이야기할 것이다.”1974년부터 수많은 한옥을 지어 온 문화재보수기술자 김영일(74)씨가 ‘한옥, 사람이 살고 세월이 머무는곳’ (청아출판사, 2014)에서 자신 있게 밝힌 대목이다.

충북 진천으로 발길을 잡은 단 하나의 이유도 바로 보탑사다. ‘우리시대의 문화재’라는 지인의 추천에 호기심도 일었다. 1991년 공사를 시작해 3층 목탑을 짓는데 5년이 걸렸고 2014년에야 부속건물 공사까지 마쳤으니 완공까지 꼬박 23년이 걸렸다.

내력으로만 보면 천년 고찰이 수두룩한 한국불교건축사에 명함도 못 내밀 신생 사찰이지만 보탑사에는 신영훈 초대 한옥문화원원장, 단청명인고 한석성, 도편수 고 조희환을 비롯해 도공, 와공, 석공, 야철장, 조각장등 문화재급 한옥전문가들의 집념과 기술력이 응축돼 있다.


진천읍에서 백곡면으로 넘어가는313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고개마루 조금 못 미쳐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자그만 연곡저수지가 나온다. 파르스름한 물빛이 규모에 비해 제법 깊어 보인다.

만뢰산(혹은 보련산, 612m) 자락에서 흘러내린 계곡은 위압적이지 않고 아늑함이 느껴진다. 올망졸망한 산자락에 둘러싸인 지세가 꼭 한 겹 두겹 피어나는 연꽃 잎을 닮았다. 저수지를 지나 약 1km 정도 좁은 도로를오르면 길이 끝나고, 이 산골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웅장한 건물을 만난다. 대부분 산사는 숲과 나무에 가려져서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42.73m, 아파트 14층 높이의 보탑사 3층 목조건물은 단박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공식명칭은 ‘보련산 보탑사 통일대탑’, 신라의 황룡사 9층 목탑이 삼국통일을 기원하듯 남북통일의염원을 담은 이름이다. 김영일씨의 주장에 따르면 탑이 세워진 곳은 연꽃의 한 가운데 꽃술에 해당하는 지점이다.

보탑사 이전까지 국내에는 보은 법주사 팔상전(국보 제55호)과 화순 쌍봉사 대웅전(보물 제163호) 등 2개의목탑만 전해왔다. 외관은 각각 5층과 3층이지만 실제 1층만 들어갈 수 있고 위로는 올라갈 수 없다. 보탑사 통일대탑이 이 두 목탑과 가장 다른 점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3층까지 올라갈 수 있는 구조라는 점이다. 1층 대웅전에서 2층 법보전, 3층 미륵전이 내부 계단으로 연결돼 있다. 일반적인 사찰에서 최소 3개 전각이 필요한 것을 하나의 목탑에 전부 넣은 셈이다.

김영일씨는 “최대한 옛 백제 장인 아비지가 만들었던 황룡사 목탑의 양식을 현대에 복원한다는 기분으로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가며 공사를 했다”고 회고한다. 아파트 27층에 해당하는 80m 높이의 황룡사 9층 목탑을 재현하기 위해 중국과 일본에 남아 있는 목탑도 거의 둘러봤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영감을 준 것은 경주 남산 탑골의 바위에 새겨진 목탑 조각이었다는 점도 밝히고 있다.

보탑사 통일대탑은 겉모습만 특이한 게 아니라 내부구조도 다른 사찰과 많이 다르다. 보통 대웅전은 정면에 하나의 불상을 모시지만, 통일대탑 1층엔 찰주(擦柱, 불탑의 중심기둥)를 중심으로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아미타여래불, 약사여래불 등 사방에 부처를 모셨다. 찰주는 999개의 석탑으로 장식해 통일대탑까지 1,000개의 탑이 완성되도록 했다.

겉보기는 3층이지만 각 층 사이에 2개의 숨겨진 층(암층)이 있는 것도 특징이다. 한옥에서 천장과 지붕사이 공간에 다락을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1~2층 사이 공간은 불상의 머리 위라는 점을 감안해 개방하지 않고 있지만, 2~3층 사이 암층은 전시실과 강연장으로 유용하게 사용한다. 겉에서 보이지 않아 암층이라하지만 일반 가정집보다는 천장이 높아 전혀 불편함이 없다. 또 2층 법보전과 3층 미륵전의 문을 열면 주위로 마루 난간을 설치해 탑돌이하듯한 바퀴 돌아볼 수 있도록 했는데, 평시에는 문을 닫아 놓은 점이 아쉽다.

통일대탑 뿐만 아니라 부속건물과 공간배치도 흥미를 끌만한 요소들로 가득하다. 매년 초파일을 전후해약사여래불 앞에는 신도들이 수박을 많이 올리는데, 동짓날 팥죽을 나눌때 이 수박도 함께 나눠 먹는단다. 불전에 놔둔 수박이 약 7개월이 지나도록 상하지 않고 젤리처럼 말캉말캉한 상태를 유지한다니 믿기지 않는얘기다.


사실관계는 더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바람·비·햇빛 등 여러 자연요소를 고려해 가람을 배치했다는 설명을 들으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보탑사 앞에는 수령 350년 된 큰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김영일씨는“ 거기서 올라오는 바람이 바람개비처럼 부속건물의 지붕을 타고 북쪽으로 빠져나가도록”해서 통일대탑 지붕에 눈이 쌓이는 것을 방지하도록 설계했다고 적었다. 물론 ‘썩지 않는 수박’ 얘기는 없다.

이곳을 전통 건축 전시장으로 만들고 싶었다는 그의 의도를 알고 보면 건물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언뜻 봐서 쉽게 알 수 없지만 보탑사 부속건물의 지붕은 다양한 각을 적용하고 있다. 약수터의 지붕(수각)은 원형이고, 영산전은 8각, 범종각은 7각, 법고각은 9각 지붕이다. 산신각은 한국 전통 귀틀집으로 지었고, 원장스님의 처소인 삼소실 지붕엔 너와를 얹었다.

영산전의 500나한은 신도들이 기증한 것으로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데, 방향도 맞추지 않아 그야말로 야단법석이다. 부처의 열반상을 모신 적조전 앞에는 대형 불족석(佛足石)이 눈길을 잡는다. 요즘으로 말하면 스타의 풋프린팅(foot printing)인데, 발자국 안에 물이 고이고 빗방울이 떨어질 때면 안에 새겨 놓은 물고기가헤엄치는 듯한 착시를 일으킨다. 다양한 모습 속에 질서와 조화, 위트까지 담으려는 건축가의 의도가 곳곳에 배어있다.

통일대탑의 위용에도 불구하고 보탑사는 근엄함과는 거리가 있다. 부속건물 주위는 웬만한 정원 못지않게 꽃과 나무로 어우러져 있고, 그것도 모자라 갖가지 야생화를 모은 대형 화분으로 통일대탑 주변을 장식했다. 은은하면서도 화려한 단청이 바닥에 떨어진 듯, 절간을 한 바퀴 돌고 나오면 봄날 꿈길처럼 아련하다.

통일대탑에는 현재로선 확인 불가능한 비밀도 숨어있다. 3층 미륵전위 불탑의 꼭대기 부분에 능엄경·법화경 등 불교 경전과 사적기(寺跡記)를 보관한 타임캡슐을 넣었는데, 불기 3000년인 서기 2456년에 공개할 예정이다.

choissoo@hankookilbo.com

우리시대 명장들의 집념이 응축 ‘현대의 문화재’

산신각 앞 정원은 사찰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꽃 잔치로 화려하다.



우리시대 명장들의 집념이 응축 ‘현대의 문화재’

적조전 앞 대형 불족석. 비가 오면 물고기 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고 한다.



우리시대 명장들의 집념이 응축 ‘현대의 문화재’

통일대탑 2층 법보전의 윤장대. 티베트 불 교의 마니차와 비슷하지만 돌릴 수는 없 게 고정돼 있다.



<여행 팁>
▷진천에는 김유신과 관련한 유적이 2곳 있다. 보탑사 가는 길 약 4km 아래에는 김유신 탄생지가 있다. 삼국유사에 김유신 출생지를 만노군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현재의 진천군이다. 탄생지 인근에 당시 우물로 사용했다는 연보정과 태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진천읍 벽암리에는 김유신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인 길상사(吉祥祠)가 자리잡고 있다. 서울 성북구의 사찰과 한글 이름이 같아 착각하는 이들이 많다.

▷보탑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만뢰산 자연생태공원은 잠시 쉬어가기 좋은 곳. 생태연못과밀원식물원 수목원 등으로 꾸며 가족끼리 자리 깔고 도시락 식사를 하기에도 적당하다.

<<진천=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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