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400년 원시림’… 로켓 쏘는 나로도 옆 ‘신비의 섬’에 가볼까

2025-06-13 (금) 12:00:00 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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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고흥군 우도·쑥섬

전남 고흥군은 2010년 나로도에 나로우주센터가 생기면서 첨단 과학 기지로 유명해졌다. 미지의 우주를 향한 로켓을 쏘아 올리는 곳인 동시에 군이 품은 230개 섬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자연이 곳곳에 숨어 있다. 바다와 갯벌, 원시림 등 신비로운 자연을 간직한 우도(牛島)와 쑥섬(애도·艾島)을 찾았다.

■ 하루 두 번 바닷길 열리는 우도

고흥을 둘러싸고 한반도 남단을 파고든 득량만 가장 안쪽에 우도가 있다. 전체 면적 0.62㎢, 해안선 길이 3.3㎞의 작은 섬이다. 600년 전 고려 말 때 우도에 처음 들어온 이가 섬의 지형을 살펴보다 소머리형 암석을 발견하고 우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섬보다 섬을 둘러싼 갯벌이 주인공이다. 하루 두 번 신비의 바닷길이 열린다. 물때를 맞아 바닷물이 빠지면 우도의 속살, 드넓은 갯벌이 모습을 드러낸다. 갯벌에는 검은 돌의 꽃(석화)이 잔뜩 피어난다. 석화 사이사이 송송 뚫린 구멍에는 농게 무리가 기다란 눈을 빠끔히 내민다. 눈앞에 펼쳐지는 웅장한 자연 풍경에 자못 숙연해진다.

갯벌은 50여 가구 섬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다. 주민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하며 갯벌에서 채취한 굴, 게, 바지락, 낙지, 꼬막 등 수산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이들은 주어진 자연환경에 순응한다. 주민들은 생태계를 훼손하지 않는 굴 양식법을 따른다. 보통은 대량의 굴을 수확하기 위해 물 위에 띄운 스티로폼 부이에 굴을 매달아 양식하는 ‘수하식’ 재배법을 이용한다. 굴이 24시간 물속에 잠겨 먹이 활동을 이어가기에 1년이면 성장을 마친다. 하지만 해양 미세플라스틱 발생 등 생태계 교란 논란이 제기되는 재배법이다.

반면 우도에서는 갯벌에 나뭇가지를 꽂아 굴을 양식하는 지주식 재배법이나 석화껍데기를 던져 놓는 투석식 재배법을 고수한다. 자연의 조수간만 차를 이용한 재배 방법으로 3년은 굴을 양식해야 출하할 수 있다. 이 같은 재배법에 물이 빠질 때면 나뭇가지와 석화껍데기에 붙은 검은 석화가 모습을 드러낸다. 더딘 생장에도 불구하고 자연에 맞춰 삶을 지탱하는 주민들 덕분에 우도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주민들은 노둣길을 따라 움직인다. 노둣길은 오랜 세월 질퍽한 갯벌에 나무 기둥을 박고 돌을 깔아 만들어진다. 주민들은 하루에 두 차례 물이 빠지고 길이 열리는 시간에 순천과 고흥 등으로 건너가 수산물을 팔고 돌아왔다. 40여 년 전 차량 통행을 위해 시멘트로 노둣길을 포장했다. 지난해에는 노둣길 옆으로 1,320m 길이의 보행교(우도 레인보우교)를 설치해 물때에 상관없이 섬을 오갈 수 있게 됐다.

우도 내부의 조용한 풍경도 눈길을 붙든다. 우도 남쪽의 작은 포구엔 물이 차면 득량만으로 나갈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포구 인근에는 민가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우도의 중심인 봉들산 비탈을 따라 들어선 작은 마을과 낮게 드리운 해무가 동화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섬 북쪽으로는 10여 개의 작은 무인도가 있다. 봉들산 정상 전망대에 오르거나 노둣길, 보행교를 지날 때 이 섬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특히 팽나무가 자생하는 무인도인 해섬은 넓은 갯벌의 이정표처럼 존재감이 크다. 노둣길에 가깝게 있어 우도에 들어오는 이를 가장 처음 반겨주는 섬이기도 하다.

■ ‘신성한 숲’과 ‘공중정원’ 쑥섬


로켓 발사대가 있는 외나로도의 선착장에서 14인승의 배를 타고 단 2분만 가면 쑥섬에 도착한다. 우도가 갯벌의 섬이라면 쑥섬은 식물의 섬이다. 봄이면 섬에 쑥쑥 자라는 향긋한 쑥의 품질이 좋아 쑥섬으로 불린다. 쑥섬에는 예로부터 세 가지가 없다. 개, 닭, 무덤. 주민들이 신성하게 여겨온 숲이 ‘부정을 타지 않도록’ 오래전부터 지켜온 전통이다. 개와 닭은 소란스러운 동물이라 울음소리가 부정하다고 여겼다. 개와 닭을 주로 기르는 일반의 농어촌을 생각하면 숲을 지키기 위한 주민들의 노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쑥섬엔 ‘신비의 숲’이 있다. 쑥섬의 난대 원시림은 무려 400년 동안 보존돼왔다. 외부인의 출입을 막아 숲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주민 각고의 노력이 뒷받침된 덕이다. 숲에는 수백 종의 수목과 들꽃이 자라고 있다. 쑥섬의 원시림은 2016년 처음 외부인에게 개방됐다. 숲을 훼손하지 않도록 좁게 난 오솔길 사이로 긴 세월 뿌리 내린 고목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원시림에는 200여 년 수령의 비교적 어린 동백 숲과 400여 년 수령의 어른 동백 숲이 공존한다.

수명을 다한 나무조차 이곳에선 쓰임이 다르다. 벼락을 맞은 300년 수령의 팽나무는 버섯과 곤충의 보금자리가 됐다. 2003년 태풍 매미에 쓰러졌던 250년 수령의 후박나무는 여전히 썩지 않고 선명한 얼룩무늬를 보여준다.

주민들이 수백 년간 지킨 신성한 숲을 나오면 시원한 바다 풍경이 여행객을 기다린다. 전남 여수시의 소거문도, 손죽도, 초도까지 뻥 뚫린 남해를 내려다보는 몬당길 곳곳에도 수많은 들꽃이 바람에 살랑인다. 시계가 좋은 날이면 60km 거리인 전남 완도군 청산도까지 시야에 담을 수 있다.

길의 끝에는 원시림과 함께 쑥섬을 세상에 알린 ‘공중정원’이 있다. 지역 중학교 교사 김상현(57), 약사 고채훈(54) 부부가 20년 넘게 정성으로 가꾼 정원이다. 해발 83m에 7,549㎡ 규모다. 2000년 새해에 남편인 김씨가 “남은 인생 동안 하고 싶은 일을 적어 보자”고 제안했고, 부부는 일심동체로 ‘사회공헌’을 떠올렸다. 부부는 섬의 자연과 문화를 지키면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사업으로 낙후된 쑥섬 정상에 꽃을 심기로 했다. 정원 부지를 매입하는 데에만 8년이 걸렸다.

당시만 해도 칡넝쿨이 무성했다. 잡초를 제거하고 꽃나무를 심었다. 부부의 노력에 20여 년 만에 300여 종의 꽃이 피는 정원이 됐다. 2017년에는 전남 민간정원 1호로 지정됐다. 정원은 계절에 따라 각양각색의 꽃이 핀다. 별 정원(봄), 수국 정원, 달 정원(여름), 사초 정원(가을)이 있다. 수국이 만개하는 6, 7월이 쑥섬의 성수기다.

쑥섬은 ‘고양이섬’으로도 불렸다. 섬에 쥐가 번식하면서 주민들은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고양이 수가 늘어나면서 개와 닭, 무덤이 없어 ‘3무(無·개·닭·무덤)’ 섬이었던 쑥섬은 원시림과 정원, 고양이로 유명한 섬이 됐다. 마을 돌담과 고목에 앉아 섬의 풍경을 관망하는 고양이가 섬의 명물로 자리매김했다.

■ 축사를 자연으로 꾸미다, 금세기정원

고흥군의 ‘금세기정원’도 자연친화적인 두 섬의 맥을 잇는다. 정원은 고흥군의 동쪽 여자만을 접한 약 624만㎡(189만 평)의 농지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다. 정원이 이곳에 자리한 이유는 축사의 외관과 냄새를 가리기 위해서다. 본래 농업에 종사해온 ‘죽암 농장’이 1995년 축산업을 시작하며 나무를 식재하기 시작했다. 30년간 자란 나무와 꽃이 거대한 정원(5만428㎡)이 됐다. 메타세쿼이아 진입로를 지나 정원에 들어가면 잔디광장이 펼쳐진다. 정원에는 배롱나무, 돈나무 등 관목 46종과 국화, 장미, 백일홍 등 초화 77종, 한반도 모양 연못 주위로 조성한 수변 공원도 있다. 2017년 전남 민간정원 4호에 등재됐다. 사유 농지 내부에 있지만 누구든 무료로 둘러볼 수 있다.

<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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