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라지는 것들

2016-05-13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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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뉴욕타임스는 ‘사라지는 것들’로 공중전화, 우체통, 백열등, 다이얼 업 인터넷, 자동차 클러치 페달, 종이 교과서 등을 예로 들었다. 미국에서는 로컬정부 차원에서 공중전화기 철거 작업이 한창인데 뉴욕에서만 올들어 시내 7,500여개의 공중전화 부스를 없애고 있고 파란색 우체통도 이용률을 모니터 하며 잔존 혹은 철거를 결정하고 있다고 한다.

직업면에서 보면 우편통이 사라지니 우편배달부도 조만간 사라질 것이다. 이메일이 보편화되면서 손으로 쓴 편지도 사라졌다. 모바일 혁명과 자동화된 기계가 검침원과 농부, 기자, 벌목공, 드릴 프레스 기사의 일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점차 월스트릿 트레이더, 보험설계사와 회계사, 항공기 승무원 같은 직업도 사라질 것이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자. 수십 년간 우리와 함께 하다가 사라지고 만 것들이 참 많다.
한국에서 살던 시절, 아침저녁으로 대하던 연탄이나 석유곤로, 흑백TV, 검정고무신, 버스 회수권, 야외전축, 워크맨, 라디오수리점, 솜틀집 등은 오래 전에 사라졌고 미국에 살면서는 필름 카메라, CD, 비디오테이프, 타자기 등이 이미 고물이 되어 집 한구석에 방치되어있을 것이다. 주말마다 아이들과 함께 가서 영화 비디오를 고르는 재미를 주던 블록버스터 비디어 대여 체인점은 이미 2009년 9월 파산선고를 했다.


어려서의 먹거리 업종인 뻥튀기, 찹쌀떡, 군밤, 양은도시락, 두부장수, 번데기 장수, 냉차나 아이스케키 장수 등은 추억으로 남았다. 또 아련한 옛 정취를 살려주는 완행열차, 전화교환수, 공기놀이, 아궁이, 다듬이 방망이, 리어카, 동시상영극장 등도 역사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이렇게 우리와 함께 먹고 자고 함께 숨 쉬던 물건이나 먹거리, 풍습들이 하나씩 둘씩 사라지고 잊혀져간다. 오늘, 내일, 모레, 글피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것들이 사라져갈 것이다.

뉴욕 이민사회에도 사라져가는 것이 있다. 수십년간 뉴욕 이민자의 전형으로 옐로캡, 프리첼 노점상, 한인 청과상 세 가지가 있었다. 한때 뉴욕시 청과상 70%가 한인이 경영했었는데 치솟는 렌트, 뉴욕시의 관리 강화 등등으로 많은 가게가 문을 닫았고 네일업과 세탁업 등의 한인 자영업도 점차 갈 길이 험해지고 있다.

사라지는 것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므로 추억의 공간 속에 저장됨으로써 슬프고도 아름답다고들 한다.
독일보다 한국에서 더 유명했던 안톤 슈낙(1892~1973), 그의 에세이집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한 대목이 기억난다. ‘울음 우는 아이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쇠창살 뒤로 보이는 창백한 죄인의 얼굴, 무성한 나뭇가지 숲에 떨어지는 하얀 눈송이, 이 모든 것이 또한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독일 프랑켄 지방 리넥에서 출생한 안톤 슈낙의 에세이는 1953년 고등학교 2학년 국어교과서에 수록되면서 1982년 교과서 개편때까지 근 30년간 한국 청소년들의 심금을 울려주었다. 수많은 패러디물이 나왔고 ‘사라져가는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며 다들 유행처럼 이 말을 되뇌었다.

과연 우리는 사라져가는 것들이 슬픈가? 문명의 발달로 생활에 편리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발달하면 할수록 그만큼, 우리가 체념하고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많아진다.
휴가지까지 따라오는 이메일과 카톡, 어딜 가나 직장과 친구, 가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책이나 사전을 뒤질 것도 없이 똑똑 몇 번 누르기만 하면 모든 정보가 좌르르 나온다. 생각도 사라졌다. 독서를 하지 않으니 사유의 깊이도 없다.

친구와 마주앉아 대화보다는 다들 소셜네트워킹 하느라 바쁘니 점차 만날 일도 없어지며 자신이 오늘 누굴 만나 무엇을 먹었는지 낱낱이 올리다보니 프라이버시가 없다. 온라인마다 익명성 악플이 난무하면서 그야말로 예의범절도 사라졌다. 손때 묻은 물건이나 풍경보다 사제나 친구간의 따뜻한 말 한마디, 사람간의 정이 사라진 것, 이것이야말로 슬픈 것 아닌가.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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