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더 나은 것’이 가장 나쁠 수 있는가

2016-05-12 (목) 백유나 뉴욕가정상담소 청소년 프로그램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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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이민가정에서 태어나 자라온 나는 이곳 미국 고등학교로 유학 온 한국 유학생들에 비하면 미국 사회와 문화에 훨씬 잘 적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미시간주 중소도시의 작은 사립학교였는데, 소수 인종이라고는 나를 포함해 우리 가정의 세 자매 밖에 없는 백인 학교였다.

어느 날 한국에서 유학생들이 몇 명 들어왔는데, 그들은 옷차림과, 서툰 영어 또 특별히 그들끼리 붙어 다니는 태도 때문에 교내에서 아주 쉽게 눈에 띄었다. 되돌아 보면, 한국에서 갓 미국에 도착해 모든 것이 익숙치 않는 학생들이 백인학생들과 교사, 직원으로 구성되어 있는 백인 일색의 문화 속에서 학교를 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생각된다.

그러나 그 당시에, 나는 그런 그들의 처지를 이해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었다. 오히려 모든 나의 백인 급우들과 상담지도교사까지 내가 한국 유학생들의 대변인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상황에 빠져버린 내 처지에 화가 났었다. 학교는 내게 물었다, “왜 한국 학생들은 자기네들끼리만 몰려다니지?” “왜 좀 더 다정하지 않지?” “한국 학생들은 어째서 너 같지 않지?” 나는 백인들에게 한국인을 설명하는 입장에 처한 것을 분하게 여겼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그 처지에서 빠져 나올 수 없었다. 한국 학생들을 대변해야 하는 강요된 대변인 역할에서 한가지 내가 깨닫게 된 것은 백인 급우들과 학교의 직원들이 어떤 시각으로 한국 학생들을 보는가, 또 나아가서 나를 보는가 였다. 그들은 나를 ‘ 좀더 나은’ 한국인 - 유학생 급우들보다 좀더 미국 문화에 동화되고, 백인들의 기대치에 잘 따르는 한국인 - 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편견은 고의적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그렇듯이 나는 다수 문화인 백인 문화에 잘 받아들여지길 원했고,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하고 있었다. 나는 다수인 백인 급우들과 상담지도교사가 먼저 유학생들이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다가가야 한다거나, 한국인이라고 낙인 찍고 학교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문제삼지 않았다. 대신 백인들의 기대치에 잘 따르려고 했고 ‘더 나은’ 한국인으로 구별되고자 했다. 그러나 결국 그런 나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다. 한 백인 급우가 나의 언니가 명문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은 실력보다는 affirmative action 때문이라고 우겼을 때, 또 어떤 선생님의 강의에서 ‘정상적인’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미국에서 사는 것이 축복이라는 표현을 들었을 때, 내가 유학생 급우들보다 ‘더 나은’ 한국인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더 이상 쓸데 없는 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내가 먹는 음식이나 내 본연의 자아는 이 백인 학교에서는 정상적이 아닌 것이고, 내가 또 내 가족이 성취하는 어떤 업적도 그냥 이 미국사회의 배려 정도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더 나은’ 이라는 함정은 나만의 독특한 경험은 아니다. 이곳 미국에서 사는 아시안 아메리칸들은 이민자 그룹들 중에 ‘모범 소수인종’ 으로 보여지고 있다. 다른 소수 인종들보다 더 높은 교육을 받았으며 전반적으로 더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아시안 아메리칸들이 이런 선입견에 동의하고 있다고 해도 이런 생각 안에 우리를 가둠으로써 더욱 성공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궁극적으로 제한시키고 있다는 데에 있다.

예를 든다면, 많은 아시안 아메리칸들이 가난과 정신질환, 그리고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다른 소수 인종들과 비교할 때 문화 맞춤 서비스가 훨씬 더 적으며, 이런 이슈들을 처리하기 위한 정부의 자금도 훨씬 적게 주어지고 있다. 그렇게 된 이유 중에는 아시안 아메리칸들은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으므로 별 도움이 필요치 않을 것이라는 잘못된 선입견이 한 몫을 하고 있다. 명문대학을 나와 최고 임금을 받는 직장을 가진 아시안 아메리칸들도 그들의 승진에 한계를 직면하게 된다. 연구 보고에 따르면 아시안 아메리칸들은 고위급 지도적 역할에서 상당히 소외되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잘못된 선입견과 그에 따른 정부의 아시안 커뮤니티에 대한 지원 부족, 그리고 Support Network의 부재 등이 아시안 아메리칸들이 놀라운 잠재력을 가진 훌륭한 일꾼들이지만 고위급 지도자로 성장해 가는 데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은’ 한국인이라는 그 생각이 나로 하여금 고등학교 시절 한국 유학생들에 대한 불평등한 편견에 대해 잠잠하게 했던 것처럼, 모범 소수인종의 신화가 오늘날 모든 아시안 아메리칸들을 성공적이라고 색칠하고 우리 한인 사회의 진정한 필요들을 어둠 속에 가두고 있는 현실이다.

뉴욕가정상담소 (KAFSC)는 뉴욕한인봉사센터 (KCS) 그리고 민권센터 와 함께 뉴욕 한인사회가 진정한 공동체로 성공하는 가장 좋은 길은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도전들을 함께 직면 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것이 오는 5월 28일 플러싱에서 사상 처음으로 New York Asian American Youth Conference와 취업 박람회를 공동 주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학생들이 모든것을 주관하는 이 컨퍼런스는 모범 소수인종이라는 신화 뒤에 가려진 우리 한인사회의 문제들 - 정신건강문제, 관계학대와 인종편견 - 등을 다룰 것이다. 또한 직장에서 아시안 아어메리칸으로서 받는 도전들에 대해 얘기해 줄 수 있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아시안 아메리칸들과 학생들을 연결시켜주는 취업 박람회도 있을 예정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우리가 대면하게되는 장애물들을 미리 드러냄으로써 우리 자신들과 아시안 어메리칸 사회가 함께 진정한 발전과 성공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나는 대학에서도 한국 유학생들의 다정하지 않은 태도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처지를 경험한 적이 있다. 수업 중 토론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면서 나는 갑자기 혼자 버려진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수 백인들에게 인정받는 것에 신경 쓰지 않고 고등학교 시절 내가 할 수 있었지만 하지 못했던 말을 던졌다. “그들에게 우리의 기대를 강요하지 말고 왜 우리가 먼저 그들을 학교 공동체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지 않느냐?” 라고.. 또 “그렇게 할 때 우린 서로 다른 모습 그대로를 존중할 수 있고 또 진정으로 서로를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라고.

5월28일 플러싱에서 열릴 Youth Conference와 취업 박람회에 관한 문의가 있으면, 언제든지 저에게 연락하기 바랍니다. (718-460-3801, ext. 19 or?lydia.baek@kafsc.org)

<백유나 뉴욕가정상담소 청소년 프로그램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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