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표현의 자유

2016-05-12 (목) 09:34:32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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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는 알 권리와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표현의 주목적이 메시지 전달에 있고,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이유가 그 표현을 접하는 대상의 알 권리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최근 이에 관련된 사건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여자 소방대원 실종 및 자살 사건이다. 소방대원의 실종 후 ‘페어팩스 언더그라운드’라고 불리는 블로그에 그에 관한 익명의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소방대원의 성생활에 관한 것들도 많았다고 한다.

카운티 소방국장은 웹사이트 소유주에게 그러한 글들을 내려 줄 것을 요청했다. 소유주는 자진해서 내릴 용의는 없다고 했다. 판사의 명령을 받아오라고 했다. 그 글들이 이미 복사되어 다른 사람이 또 올릴 수 있고, 더욱 중요한 것은 자살한 소방대원 주변에서 과연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정확히 알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단, 유가족들이 요청한다면 글들을 내릴 용의가 있다고 했다.


그 웹사이트를 나도 들어가 본 적이 있다. 교육위원회나 학교에 관한 사항도 올려진다는 얘기를 듣고 궁금했다. 그랬더니 역시 진위 확인이 어려운 내용들이 난무했다. 익명성을 악용한 무책임이 드러난 듯했다. 그런 글들을 계속 읽는 게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해서 그 웹사이트의 방문을 중단한지 오래된다.

그리고 이 웹사이트 소유주를 상대로 몇 년전에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회가 소송을 제기한 적도 있었다. 당시 누군가가 한 고등학교 사무실의 컴퓨터를 해킹해 일부 학생들의 성적표를 빼내 그 웹사이트에 올렸고, 교육청 담당자는 이 사실을 인지한 즉시 소유주에게 성적표는 불법으로 취득된 것인 만큼 웹사이트에서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그 때도 소유주가 거절했다. 이미 일반에게 노출된 정보이고 누가 다른 곳에 복사해서 낼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도 일반의 알 권리 보호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교육청은 불법취득 정보에 대해 알 권리는 적용되지 않으며 학생들에 관한 정보는 프라이버시 보호법에 의해 보호 받는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웹사이트 소유주 설득에는 실패했다. 결국 긴급소송을 제기했고 글들을 내리라는 판사 명령을 받아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웹사이트 소유주는 재판에 출두하지 않았다. 그가 어떤 소신이 있었다면 설사 비용문제로 변호사를 고용하지 않더라도 법원에 출두해 자신의 주장을 개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에겐 삭제를 거부하며 내세웠던 주장들 모두가 일반인들로부터 주목을 끌기 위한 마케팅 전략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그것은 이번 소방대원에 관한 글들을 유가족들이 요청하면 내리겠다는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소신에 따라 삭제를 거부하는 것이었다면 유가족들 요청이 있어도 글들을 내려서는 안 될 것이다.

알 권리와 관련해 최근에는 교육청 홍보담당자와 유력 주류 언론사 편집국 사이에 논쟁이 있었다. 그 신문사의 온라인 사이트에 대학신문 기자들이 쓴 기사를 하나 올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내용이 과거 페어팩스 카운티 내의 한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연쇄 자살사건들에 관한 것이었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미 여러 차례 대서특필 되었던 내용들이었다.

이에 교육청 홍보 담당자는 이러한 기사가 가져다 줄 수 있는 부정적 요소를 고려할 때 게재가 적절하지 않음을 지적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제시하며 학생들에게 모방 자살을 유발 시킬 수도 있는 자극적 내용은 자제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신문사는 일반의 알 권리가 우선한다고 주장하며 해당 기사의 게재를 감행했다.

이렇게 표현의 자유/알 권리와 관련된 사항으로 교육위원회도 언론사와 가끔 이견도 보이고 필요시에는 소송도 제기한다. 자유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표현의 자유와 일반의 알 권리 보호에도 분명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계점의 위치에 따라 한 사회의 민주적 성숙도가 가늠된다고 할 때, 가능한 한 멀리 찍힐수록 좋을 듯하다. 우리가 겪었던 모국의 독재시절에도 독재자는 국민들의 적절한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보호했다고 주장하지 않았는가. 국가안보를 한계점으로 책정하고 말이다.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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