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담론이라 하기에는 너무 거창하고 제격에도 안맞으니, 일개 소시민으로서 통일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담담하게 풀어놓은 썰이라는 의미에서 ‘통일담설’이 적절한 것 같다.
지난 달 19일 9.19 평화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 기조연설에서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느닷없이 “통일하지 말자”, “통일을 꼭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려놓자”. “현실을 받아 들이고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는 소위 ‘두 국가론’을 주장했다. 나아가 23일에도 “통일은 가치로서 지향만을 남긴 채 봉인하고, 두 국가 체제로 살면서 평화롭게 오가며 협력하자“며 이를 거듭 확인했다.
사람은 변하기에 89년 전대협의장 당시 임수경 파북을 주도한 것을 기점으로 ‘통일’이슈를 학생운동사에 뿌린내리게 한 전력과 2019년 21대 총선 불출마를 계기로 정계은퇴를 하면서 통일운동에 매진하겠다던 선언, 그 다음 해에 북한 영상 저작권료를 남에서 거둬 북으로송금하는 일을 주업으로 하는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 이사장의 이력과 김일성종합대학 전자도서관 사업 및 한국지자제와 북한 도시간의 결연사업등의 활동에 대해 그 진의를 따지며 왈가왈부 하고 싶지는 않다. 그도 사람인지라 변할 수 있고 나름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그의 ‘두 국가론’ 주장이 작년 12월말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우리를 ‘남조선’대신 ‘한국‘으로 부르고, “북남관계는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관계”라며 통일을 위한 조직과제도를 모두 없앤 북의 최근 통일정책 변화와 궤를 같이 한다는 분석이나 헤아리기 어려운 그의 복잡하고 정치적인 셈법을 추론하는 것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다.
단지, 바쁜 생활전선에서 일상에 충실하는 국민들, 나아가 해외동포들에게 까지도 펀더멘탈한 ‘한반도 통일’에 대해 한번쯤 고민해 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정도에 그 의미가 있었지 않나 싶다.
통일은 우리가 직면한 현실의 문제이고 궁극적으로 풀어내야 할 숙제이다. 통일은 허황된 꿈이 아니다. 통일은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안에 잠재되어 있는 후손들에 대한 미안함과 부채의식이다.
이제 통일은 한민족의 일원이라면 누구나 가슴 한 켠에 품고 있는 역사적인 소명으로 숙명과도 같은 것이 되었다.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크고 작은 산이 참으로 많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지만, 방법론적으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남북 상호 합의하에 이루어지는 평화통일이 최선의 답이다.
전쟁을 통한 통일 시도가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렀으며 무의미한지를 우리는 74년전에 이미 겪었다. 나아가 시대가 완전히 바뀌었다. 북한정권 실세는 경제성장과 함께 민주화를 이뤄 낸 남한 국민들을 통치할 능력이 없음을 스스로 인정할 것이고, 우리 또한 통일이 남북 모두에 대박이지만 그 과정에서 감당해야 할 부담이 결코 만만치 않기에 서두르기 보다는 자유통일의 분위기가 성숙될 때를 기다릴 필요가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통일은 ‘한다, 만다’의 테제(These), 안티테제(Antithese)를 통해 신테제(Synthese)를 이루는 정반합의 논리가 아니며, 어느 누구도 통일거부 또는 통일반대를 명제처럼 규정할 수 없다. 통일은 우리에게 운명처럼 다가오는 필연의 역사이기에 우리는 그 때를 대비하고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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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김 전 재미부동산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