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유와 평화를 지킨 사람들

2016-05-11 (수)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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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유럽에선 귀족출신의 장교들이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앞장서 돌격을 하였다. 영국의 경우 제1,2차 세계대전 때 상류층이 다니는 이튼스쿨에서 무려 2,000명이 넘는 전사자가 나왔다.

미국도 마찬가지로 6•25동란 때 미군 장성의 아들이 142명이나 참전,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했다. 미8군 사령관 밴 플리트의 아들이 조종사로, 유엔사령관 클라크의 아들 빌 대위가 일선 중대장으로, 미 해병 제1항공 사단장인 해리스 소장의 아들 해리스 해병 소령이 치열한 전투에 참여했다 전사했다. 유엔군총사령관 아이젠하워 아들도 대대장으로, 워커 8군 사령관의 아들 역시 중대장으로 참전했다. 이들 외에도 전세계 수많은 참전군인이 장렬하게 싸우다 숨지거나 부상을 당했다. 모두가 세계 평화와 자유 수호를 위해 나선 결과다.

이번에 네델란드 출신 한국전 참전용사 고 니콜라스 프란스 웨셀씨의 유해가 63년만에 12일 한국 땅에 귀환해 유엔기념 공원에 안장되기로 한 것도 그 한 예다. 당시 치열하게 벌어진 횡성전투에 참전했다 휴전이 돼 본국으로 돌아간 웨셀씨는 귀국후에도 늘 전투에서 죽은 17명의 전우들을 잊지 못하고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폐허를 딛고 일어선 한국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느끼면서 ‘죽으면 한국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숭고한 정신이며 가슴 뭉클한 사연인가! 이들이 흘린 피와 값진 희생을 바탕으로 오늘날 한국은 세계가 놀랄 만큼 눈부신 발전상을 보이고 있다. 이들이 없었으면 한국은 자유민주주의의 길을 갈수 없었을 것이다. 워싱턴을 비롯 미전역에 이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6.25참전 기념비는 우리 모두를 숙연하게 만든다.
6.25동란이 남긴 상처와 후유증은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동족상잔의 비극적 참상은 아직 치유되기는커녕, 북한은 오히려 지속적인 무력도발과 함께 더 극렬해지고 있다.

3대째 이어진 북한의 김정은은 쌀밥이나 고깃국을 먹지 않으면 당 대회를 열지 말라는 할아버지 김일성의 당부도 마다하고 보란 듯이 이번에 제7차 당 대회를 열고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세계만방에 선포했다. 이 대회에서 ‘노동당 위원장’으로 추대된 김정은은 “몸이 찢기고 쓰러진다 해도 혁명 앞에 충실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반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북한을 쳐부술 수 있는데도 동맹국인 남한 때문에 자제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는 북한에 대해 여차하면 퍼부을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한 말일 것이다. 북한은 누가 뭐래도 핵도발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미국의 통계에 따르면 6.25동란으로 인한 피해는 100만명 이상의 한국인 사망자 외에 전국토가 폐허가 되었으며 수많은 전쟁고아가 양산됐다. 또 미군 5만4,000명을 포함, 연합군 참전군 사망자수가 200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모두 한 번도 만나본 일도, 얼굴을 본 적도 없는 남의 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참전했다 희생된 것이다.

그런데 김정은은 대체 무엇을 위해 그토록 핵 개발에 열중인가. 지금도 늦지 않았다. 배고픈 인민을 풍요히 먹이고 자유와 평화의 대열에 나란히 할 수 있도록 남북한 화해의 물꼬를 트기 위한 협상과 대화의 장에 속히 나서야 한다. 그것이 참전 군인들의 희생을 헛되이 않는 길이고,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전세계인의 여망에 부응하는 길이다.
juyoung@koreatimes.com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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