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빈자일등(貧者一燈)’

2016-05-09 (월) 연창흠 논설위원
크게 작게
부처는 순수한 우리말처럼 쓰이지만 원래 말은 불타(佛陀)다. 불타는 산스크리트 원어인 붓다(Buddha)의 음을 묘사한 한자말이다. 흔히 약칭하여 불(佛)이라고도 한다.

불교에서 붓다는 그 용도가 한정되어 있지 않다. 붓다는 불교의 창시자요 신앙의 대상인 고유명사다. 본래 그 뜻은 ‘깨달은 사람’인 각자(覺者)를 나타낸다. 따라서 불교는 우리도 ‘깨달음’인 보리를 얻으면 부처가 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붓다란 깨달은 사람, 절대적 진리를 깨달아 스스로 이치를 아는 사람, 스승이나 존경받을 사람이라는 뜻이다. 결국 불교에서는 이상적인 인격자를 붓다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처럼 불교에서는 진리를 ‘깨달은 사람’으로서의 붓다가 얼마든지 있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붓다’라 하면 불교의 창시자를 뜻한다. 불교 창시자로서의 붓다는 석가모니라 존칭되는 역사적 인물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역사적 인물로서 ‘부처님’이라 호칭한 것은 석가모니를 가리키는 셈이다.


오는 14일은 음력 사월초파일로 불교 최대 명절인 석가탄신일이다. 불교도들은 ‘석가탄신일’보다는 ‘초파일’, ‘불탄절’, ‘부처님 오신 날’ 등으로 더 많이 부르고 있다.

부처님 오신 날에는 ‘연등, 관등놀이, 방생, 탑돌이’ 등을 하는 풍습이 있다. 연등은 석가탄신일이 다가오면 형형색색으로 제작해 절뿐만 아니라 길에서도 볼 수 있다. 연등은 ‘등불을 밝힌다’는 뜻이다. 등불을 밝힘으로써 무영의 어리석음을 깨치라는 붓다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연등행사는 불경의 하나인 현우경(賢愚經)의 난타라는 가난한 여인의 등 이야기에서 유래됐다. 내용은 이렇다.-난타라는 가난한 여인이 있었다. 하루는 왕과 대신, 부자들이 ‘붓다’가 있는 곳을 ‘등’으로 밝혔다. 그 말을 들은 난타도 등을 밝히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가난했다. 절실한 마음으로 구걸을 해서 동전 두 닢을 모았다. 그 돈으로 기름을 구해 등불을 밝혔다. 등은 켤 때부터 위태로웠다. 너무 기름이 적어 곧 꺼질 것처럼 보였다. 날이 밝자 등불이 하나 둘 꺼지기 시작했다.

왕과 부자들의 크고 화려한 등도 기름이 다하자 곧 꺼졌다. 그러나 난타가 올린 등불을 여전히 밝게 타올랐다. 붓다 제자가 세 번이나 끄려했으나 꺼지지 않았다. 붓다는 제자에게 ‘이 등불은 비록 약하지만 여인의 큰 보리심이 담겨있다. 바닷물을 쏟아 부어도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왕과 부자가 바친 화려한 등보다 가난한 여인의 정성어린 한 개의 등이 훨씬 귀함을 역설하고 있다. ‘빈자일등(貧者一燈)’은 ‘가난한 사람이 켜는 소중한 등불 하나’란 뜻이다. 불가에서는 ‘가난한 사람이 온 마음을 다해 베푸는 선행’을 가리켜 ‘빈자일등’이라고 한다.

내가 가진 것을 가난한 이웃과 나누는 것은 사랑의 시작이다. 나눔은 가진 것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 연말연시의 생색내기도 아니다. 1년 365일 무조건적 사랑의 실천일 뿐이다. 불우이웃과의 나눔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것이다. 자랑하지도 않는다. 가진 것 없는 사람을 향한 측은지심이다. 나눔의 미덕은 순수성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나눔은 ‘재물’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 재능기부도 마찬가지다. 나눔이 부자들만의 독점물이 아닌 이유다. 빈자일등의 여인이나 가난한 과부의 헌금처럼 가진 것 없어도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 어디서나 가능하다. 빈부의 차나 남녀노소에 관계없는 사랑의 실천이다.

우리 주변에는 언제나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들이 살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금처럼 삶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을 먼저 생각하고 찾아보며 이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빈자일등’의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이유다.

<연창흠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