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꼴찌들의 반란!

2016-05-07 (토)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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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면서 항상 1등으로 달릴 순 없다. 아니, 1등으로 달리기 보다는 꼴찌로 달리지나 말 것을. 무엇이든 하면 잘 되는 사람이 있나 하면 하면 할수록 쪽박을 차는 사람도 있다. 1등으로 살아가려면 실력도 있어야 하지만 운도 따라야 한다. 헌데 꼴찌에겐 운도 따르지 않고 실력도 거기서 거기니 만년 꼴찌로 살아가야만 될까.

아닐 거다. 꼴찌에게도 기회는 올 테니 낙심,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사람에겐 반드시 1등도 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올 수 있다. 꼴찌가 1등이 되기까지는 피눈물 나는 과정을 거쳐야겠지. 꼴찌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맨 끝에 위치해 있음이라 돼 있다. 꼴찌 다음엔 없으니 맨 끝이란 벼랑 끝 같은 의미도 내포하는 듯하다.
유럽엔 여러 개의 프로 축구대회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영국의 프리미어리그(EPL)다. 이 게임은 1년 내내 토너먼트로 진행되며 그 중 가장 성적이 좋은 팀이 1등이 된다. 이 대회에서 만년 꼴찌를 오르내리던 레스터시티가 지난 5월3일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확률 5,000분의 1, 즉 0,02%다. 팀은 창단 후 132년 만에 1등이 됐다.

비결이 있을 텐데 무엇일까. 평론가들은 첫 번째로 선수들을 사랑하고 감싼 감독의 리더십에 점수를 주고 있다. 감독 라니에리는 선수들 뒤에서 선수들의 열정에 불을 지폈고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며 선수들에게 형제애를 심어주었다. 그 결과 선수들은 하나같이 똘똘 뭉쳤고 기적 같은 우승을 안아 전 세계 축구팬을 놀라게 했다.


미국여자프로골프대회(LPGA) 출전 132회 만에 우승을 차지한 한국프로골퍼가 있다. 신지은, 미국명 제니 신이다. 제니는 지난주 일요일인 5월1일 텍사스 슛아웃에서 다른 골퍼들을 제치고 1등을 차지했다. 공교롭게도 레스터시티가 132년 만에 우승했는데 제니신은 132회 만에 우승했다. 2011년 LPGA에 데뷔한 24세의 제니 신.
그녀의 우승 비결은 무엇일까. 대회 3일째인 토요일까지 미국 프로골퍼 필러에게 4타를 뒤졌던 제니다. 마지막 일요일, 제니는 보기 없는 4언더 플레이로 침착히 경기에 임해 우승했다. 무관의 제왕이라 불렸던 제니가 우승한 비결은 막판 집중력에도 있었겠지만 132회 동안 좌절하지 않고 참아온 그녀의 인내와 노력에 있으리라.

인생의 꼴찌 같은 엿장수의 딸로 태어나 가발공장 직공이었던 한 여성.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여성들에게 도전정신을 심어 준 서진규박사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에는 꼴찌를 면하지 못했단다. 그리고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가발공장 직공과 식당 종업원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다 선교사의 식모로 미국에 들어온다.

미국에서의 삶은 투쟁 그 자체다. 식당종업원, 결혼, 파국, 미군사병입대, 간부사관지원, 미군장교, 39살 메릴랜드대졸업, 44살 하버드대석사, 박사과정, 48살 미군소령제대, 58살 하버드박사취득. 인생의 꼴찌가 미국 온지 30여년 만에 인생의 1등이 된 거다. 그는 자신이 자신을 사랑한 것이 그의 오늘을 만들었다고 회고한다.

꼴찌가 1등이 되는 비결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자신을 누구보다도 사랑해야 한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사랑해 주겠는가. 우울증에 걸려 헤어 나오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좌절하는 친구들, 혹은 한 번의 실패로 다신 일어나질 못하는 사람들. 그들은 그들 자신을 너무도 미워한 까닭에 그렇게 될 수도 있다.

레스터시티의 우승. 라니에리 감독의 선수 사랑이 가져다 준 기적이다. 132회 만에 우승한 제니 신, 인내의 결과다. 하버드를 졸업한 서진규 박사. 자신을 사랑하며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노력의 대가다. 꼴찌들의 반란은 언제든지 있을 수 있다. 꼴찌 같은 생을 살아간다고 낙심하지 말자.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일등이 되리.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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