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적이 필요한 시대

2016-05-06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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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한 레스터시티, ‘5,000분의 1의 기적’, ‘신데렐라 스토리를 썼다’, ‘스포츠의 가장 위대한 동화 완성’ 등등 창단 132년만에 우승을 차지한 레스터시티에 대한 찬사가 그치지 않는다.

이번 우승의 주역은 스트라이커 제이미 바디와 윙 포워드 리야드 마레즈, 2012년 레스터에 입단한 바디는 오전에는 주급 30파운드를 받고 치료용 부목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축구를 하는 선수였다.

프랑스 빈민가 출신인 마레즈도 제대로 축구교육을 받지 못해 혹평을 받다가 이번에 발군의 실력으로 한 몫 했다. 지난해 7월부터 감독으로 기용된 이태리 출신 클라우디오 라니에리의 리더십도 우승의 핵심 요인이다.라니에리 감독은 그리스 국가대표 감독으로 있던 2014년 11월, 페로 제도와를 상대로 한 유로 2016조별 예선에서 패배하며 중도에 경질되었었다. 그러면 ‘개천에서 용이 세 마리가’ 난 건가.


요즘처럼 금수저, 흙수저가 일반용어가 된 세상에는 이런 기적 같은 일들이, 입지전적인 인물 스토리가 필요하다. 어려운 배경을 극복하고 불굴의 의지로 성공하는 확률이 드문 세상이 되어 갈수록 사람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싶다, 그래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성공스트레스가 심한 아시안 이민자들에게는 여전히 기적이나 미담, 입지전적인 스토리가 따스한 위로를 준다.

지난 2월에는 과속 차량에 위반 딱지를 끊으려던 경찰이 졸지에 출산을 돕는 산파로 변신한 미담이 미소를 짓게 했다. 앨라배마주 경찰인 마이클 켈저는 72번 국도를 과속으로 달리던 차량을 뒤쫒아가 갓길에 세우고 보니 운전자의 아내가 막 아이를 출산하려는 순간. 켈저는 곧바로 아이를 받아내고 구급차를 신속하게 불렀으며 출산 현장을 깨끗이 청소한 후 산모와 아이가 추위에 떨지 않도록 따뜻하게 보호했다.

응급차가 온 후 산모와 갓난아이를 병원에 옮기도록 돕고 남편을 병원으로 데려다 준 다음, 꽃다발과 각종 신생아 유품을 사들고 막 부모가 된 부부를 찾아갔다. 과속한 남편에겐 딱지 대신 과속 경고만 부과했다. 사람들은 이런 인간 냄새 풀풀 나는 실화를 좋아한다.

2014년 4월15일 보스턴 테러1주기 현장의 한 모녀 사진이 화제가 되었다. 보스턴마라톤 결승점 근처에 서있다가 압력솥 파편으로 어머니는 두 다리를 잃었고 고등학생 딸은 다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절망에 잠긴 모녀에게 한 20대 아프가니스탄 참전군인이 찾아왔다. 그는 두다리를 전쟁으로 잃었다. “우리는 고통 받는 게 아니라 성장하고 있다. 나역시 이전보다 더 강해졌다. 두 사람 역시 더 강해질 것이다.” 며 끊임없이 위로했고 마침내 모녀는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의족을 벗고 흉터를 그대로 드러낸 어머니는 “나는 여전히 서있다.”고, 큰 흉터를 드러낸 딸은 “나에게 흉터를 낼 수는 있지만 나를 멈추게 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5월 졸업시즌이다. 가난한 어머니의 눈물겨운 노고가 뒷받침되어 대학 졸업식을 앞둔 아들이 있었다. 변변한 옷이 없었던 어머니는 누추한 모습이 아들에게 누가 될 까 졸업식에 가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어머니를 모시고 간 아들은 대표연설에서 수석졸업의 영광을 하나님, 스승, 어머니에게 돌린다. 연설을 마친 그는 1등 메달을 청중들 사이로 걸어 들어가 어머니 목에 걸며 “어머니, 감사합니다” 한다.

이후 그 아들은 모교인 프린스턴대학 총장, 뉴저지주 주지사를 거쳐 미 28대 대통령이 된다. 우드로 윌슨(1856~1924)이다. 1918년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는 비록 조선의 독립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독립운동에 대한 열망을 고취시킨 바 있다.

역경을 딛고 상처를 극복한 뒤 불가능한 업적을 이룬 이들, 가장 인간답게 사는 평범한 사람들, 이들에게는 빛이 난다. 오늘,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이런 기적과 미담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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