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문학의 가능성, 채식주의자

2016-04-29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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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류작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후보에 오른다는 것 자체로 큰 영광인 이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린다.

‘채식주의자’는 지난달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상 후보로 선정되어 총 155명 중 13명의 후보, 다시 6명의 최종후보로 선정되면서 나날이 화제가 되고 있다. 2004년에 씌여진 이 책은 지난 해 1월 영국 오프토벨로 출판사에서 영문명 ‘더 베지터리언( The Vegetarian) 번역으로 출간되면서 데버러 스미스 번역가도 화제가 되었고 젊은층 사이에 "이 책 읽었어?" 하는 대화가 오갈 정도라고 한다.

이 ‘채식주의자’는 채식주의자( 창작과 비평 2004년 여름호 게재)-몽고반점(문학과 사회 2004년 가을호)-나무 불꽃(문학 판 2005년 겨울호)에 발표된 세 편의 중편 소설을 합한 것이다. 따로 있을 때는 저마다의 이야기처럼 보이나 합해지면 모두 연결이 되고 소설로서의 극한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는 평을 듣고 있다.


‘채식주의자’는 무서운 꿈을 꾸고 난 다음날부터 고기요리 앞에서 입을 닫아버리는 아내 영혜를 보는 남편의 시각에서 쓴 글이다.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는 부모 앞에 자해를 하고 서서히 미쳐가는 그녀는 가죽으로 된 구두조차 버려 운동화를 신는다. 거식증 환자가 된 그녀는 어릴 적 자신을 물었다는 이유로 비참하게 죽임을 당한 개에 대한 죄의식이 숨겨져 있다.

‘몽고반점’은 참으로 충격적이고도 섹시한 글이다. 한 남성이 아내로부터 처제에게 몽고반점이 남아있을 것이라는 말 한마디에 사그라지던 열정이 불타오르고 결국 부드럽고 둥근 꽃잎들을 화려하게 바디 페인팅한 후 비디오 촬영을 한다. 이는 모든 친족관계, 작품, 아이까지 박탈당하는 결과를 낳는다. ‘나무 불꽃’은 서서히 죽어가는 동생의 병원 뒤치다꺼리와 아픈 아이까지 거두는 영혜의 언니 인혜의 속내를 보여준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다양하고 깊숙하면서 생생하게, 단맛•쓴맛•떫은 맛 등의 오감을 지닌 한글의 묘미를 보여준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가 없었더라면 오늘날 한류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는 약 50만년, 문자의 역사는 약 6,000년이다. 문명의 발상지는 문자의 탄생지와 일치하며 문자체계가 정비된 시기에 그 나라를 통일되거나 부강해졌다.

최초의 문자인 쐐기문자, 알파벳의 뿌리인 이집트 문자, 알파벳 모음의 등장 등등 문자는 사회적 영향 속에 끊임없이 변화되어갔다. 중국어는 한자를 사용했으나 중국어를 쓰지 않는 주변국가들은 소리를 한자로 표현하기 어려웠고 고유 언어 특색에 맞게 한자를 변형해 사용했다. 훈민정음 창제 전에는 한국도 향찰과 이두를 사용했다.

중국은 56개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이다, 한족이 대부분이지만 드넓은 지역에 널리 분포되어 몽고족, 회족, 장족, 위그루족, 묘족, 이족 등등 소수민족들이 고유문화를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다. 한 다큐멘터리 속에서 묘족의 한 여성이 “우리는 문자가 없어요.” 하는 말이 참 슬프게 들렸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문자가 없어 언어까지도 사라질 위기에 처한 소수민족에게 한글로 고유어를 적는 방법을 개발해 보급해주는 한글학자들이 늘고 있다.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은 한글로 찌아찌아어를 완벽하게 표기하고 있고 태국 라후족, 중국 로바족, 남미 아이마라족 등 고유문자가 없는 소수민족을 위한 한글표기법이 개발되었거나 개발 중이라고 한다.

한강은 1970년생이니까 앞으로 더 좋은 글을 얼마든지 써낼 것이다. ‘채식주의자’가 이번에 상을 받으면 좋겠다. 노벨상은 물론 국제적인 상을 거의 못받은 한국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길이기도 하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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