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의 마음을 훔치지 말라”

2016-04-28 (목) 김창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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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인격과 성품을 가진 사람은 남의 마음을 훔치지 않는다. 스스로 으스대기 좋아하고, 실제보다 더 잘난 척하는 허세의 사람이 남의 마음을 훔치는 일에 능숙하다.

마음을 훔치는 행위는 ‘뒤틀린 나무’를 가지고 집을 짓는 것과 같다. 마음을 훔친 사실이 드러날 때, 화목했던 인간관계는 순간 뒤죽박죽이 된다. 아무리 훌륭한 능력이나 처세술을 가졌어도 마음을 훔치는 행위를 제어하지 못하면 신의와 신뢰를 잃는다.

영국의 중세 역사는 파란만장하다. 1066년에 이르러 갑자기 앵글로 색슨 왕가가 끊기고, 프랑스 노르망디 공국의 윌리엄이 영국의 왕으로 등극하는 기이한 일이 일어난다. 더욱이 윌리엄은 덴마크 바이킹의 혈통을 가진 서자가 아닌가. 여기에는 ‘사람의 마음을 훔친’ 기막힌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서자의 약점을 지닌 윌리엄이 통치자가 되기까진 시련이 많았다. 처음에 사람들은 그를 인정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윌리엄은 흔들리지 않고 온갖 시련을 잘 참아 내었다. 이 모습에 감동된 부친 로베르 1세는 윌리엄을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했다. 통치자의 날개를 단 윌리엄은 탁월한 전투력을 발휘하여 노르망디를 대공국으로 만들었다.

이 시기에 영국의 통치자는 신심이 깊었던 참회 왕 에드워드다. 에드워드와 윌리엄 사이에는 기묘한 인척관계로 얽혀있었다. 에드워드의 모친 엠마는 에드워드의 부친이며 영국 왕인 에셀레드의 왕비다. 엠마는 윌리엄의 조부 리샤르 2세의 누이동생이 된다. 윌리엄에게 엠마는 고모다. 윌리엄과 에드워드는 5촌 관계다. 또한 에드워드에게는 믿음직한 처남 헤롤드가 곁에 가까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장차 영국의 왕이 되고자 야망을 품은 윌리엄이 에드워드에게 자주 찾아와 “다음 왕관을 나에게 물려 달라”고 청원한다. 심성은 착하지만 결단력이 부족했던 에드워드는 그럴 때 마다 머리를 끄덕이며 마음에는 없는 동의를 표했다.

헤롤드가 왕이 되기 전인 1064년의 일이다. 헤롤드가 승선한 배가 항해 중 파손되어 노르망디 해변에 좌초되었다. 이때 퐁티외 백작이 해롤드를 사로잡았는데, 윌리엄이 달려와 해롤드를 구해 주었다. 이 과정에서 헤롤드는 윌리엄에게 한 가지 중요한 서약을 했다. 윌리엄에 의하면 이 서약은 왕권의 양보를 의미했다.

영국으로 무사히 돌아오자 해롤드의 마음은 달라졌다. 윌리엄과의 서약을 무시해버렸다. 위기를 이용하여 윌리엄의 마음을 훔친 것이다. 이미 에드워드도 비슷한 방법으로 윌리엄의 마음을 훔친 바 있다. 1066년 에드워드가 죽었다. 현인회의는 헤롤드를 후계자로 선출했다.

노르망디에서 이 소식을 들은 윌리엄은 경악했다. 위기를 이용하여 마음을 훔친 에드워드와 해롤드가 한없이 미웠다. 복수심이 용암처럼 끓어올랐다. 윌리엄은 즉시 교황 알렉산더 2세와 실력 있는 제후들을 설득했다. 대대적으로 용병을 동원하여 영국을 기습, 정복하였다.

거짓 서약으로 윌리엄의 마음을 훔친 일이 원인이 되어 찬란했던 앵글로 색슨 왕조는 급격히 종언을 고했다. 대신 바이킹의 후예 윌리엄이 이끄는 노르망 왕조의 새 시대가 열렸다. 리더라면 잊지 말라. “남의 마음을 훔치지 말라.”

<김창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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