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죽음도 과정 속에 있다!

2016-04-23 (토)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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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生)을 태어남이라 하면 사(死)는 죽음이다. 생과 사 사이엔 삶이 있다. 삶이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과정이다. 과정이 어떤 사람에겐 짧게 또 어떤 사람에겐 길게 갈 수 있다. 삶의 여정이랄 수 있는 과정에서 인간은 온갖 희로애락을 느끼고, 만지며 살게 된다. 그러다 삶이 다하면 가게 된다. 어디로, 죽음 후의 세계로.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어도 갈 때, 즉 죽을 때에는 순서가 없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죽는 순간의 나이를 따지면 10대, 20대에도 죽을 수 있고 90세, 100세를 넘어 죽을 수도 있다. 수세기 전만해도 인간의 평균 연령은 50을 넘기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의료기술과 신약의 개발로 인간의 수명은 80을 넘기고 있다.

지난 4월17일 새벽, 조지아 애틀랜타에 있는 병원에서 한 목사가 별세했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하필 이날은 그 목사의 61세 되는 생일날이었다. 해외선교를 다녀온 후 몸이 안 좋아 병원을 찾았는데 심장마비가 일어났고 다시 일어나지를 못했단다. 300명의 교인이었던 교회를 3,000명의 교인으로 성장시킨 능력의 목사였다.


10년이 좀 안 된 것 같다. 취재차 애틀랜타에 들렀을 때 그 목사를 만난 적이 있다. 그 때엔 그가 50대의 젊은 목사로, 패기 있게 목회를 열정적으로 할 때였다. 인상이 좋았고 아주 건강해 보였다. 교회는 날로 성장했고 부족한 게 없이 교인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던 그 목사가 지병도 없었는데 갑자기 떠난 거다.

인명재천(人命在天).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렸다란 뜻이다. 어제까지 건강하게 살았던 사람이 갑작스런 사고로 오늘, 명을 달리할 수 있다. 하늘이 언제 우리의 목숨을 가져갈지 아무도 모르는 우리네 생이요 삶이다. 그러니 거들먹거릴 것이 무어 있겠나. 그저 하루하루 겸손하게 감사히 살아가며 서로 돕고 살아가는 것이 제일 아닐까.

영국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화이트헤드는 과정 중에 있는 인간으로, 인간을 묘사했다. 인간의 태어남과 삶, 그리고 죽음 같은 모든 것이 다 과정이요 지나가는 것이라고 그는 설파했다. 과정철학을 세상에 내놓은 그는 인간뿐만 아니라 세상자체를 지나가는 과정으로 본다. 그렇다. 세상에 과정(process) 아닌 것이 무엇이 있나.
과정이란 변화를 말할 수 있다. 인간의 태어남, 삶과 죽음도 변화의 한 과정 속에 들어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제행무상(諸行無常)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풀이될 수 있다. 세상에 모든 것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이 말은 인간의 삶과 인간의 죽음, 그리고 인간의 태어남 그 자체도 변화 속의 생과 삶과 죽음임을 말한다.

장자는 죽음을 기(氣)가 모였다 기(氣)가 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라 풀이했다. 그래서 그의 아내가 죽었을 때 그는 꽹과리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그의 친구가 나무란다. 어째서 곡은 아니하고 노래를 부르느냐고. 그러니 아내가, 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데 뭐가 슬프냐고 오히려 친구를 나무란다. 장자의 죽음관이다.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손님 같다. 이런 손님을 맞이하려면 항상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며 살아가야 한다.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착하게 복을 지으며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 좀 손해를 보아도 나무라지 말고 오히려 손해 준 사람에게 복을 빌어줄 수 있는 마음.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죽음을 준비하는 거다. 어렵다.

또 하나는 신앙과 믿음을 갖는 방법이 있다. 그러면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거나 나쁜 것으로 생각하지 않게 될 수 있다. 언제 죽어도, 그가 믿는 믿음과 신앙 속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으니 그렇다. 한 번 태어난 생은 반드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있을 사후의 세계. 모든 게 과정 안에서 흐른다. 죽음도 과정 속에 있다.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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