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생명이 먼저다

2016-04-22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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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올해 100회째인 퓰리처상(공공부문) 을 수상한 AP 통신 여기자 4명의 “ 노예들의 해산물(Seafood from Slaves)“ 취재기가 기자들에게 새삼 특종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마지 메이슨, 로빈 맥도웰, 마서 멘도사, 에스더 투산 등 4명의 기자들은 2014년초 제보를 받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섬에서 3,000Km나 떨어진 벤지아섬을 찾아나섰다. 이곳에서 철창 우리에 갇힌 노예 선원들을 만나 강제노동이 이뤄지고 있음을 확인한 이들은 추가 취재를 통해 20년간 어선에 감금된 노동자, 불법노역으로 죽은 60여명이 가명으로 묻힌 무덤의 진실을 알아낸다.

그러나 기자와 AP통신 편집진들은 기사를 급하게 내보낼 경우 취재원 노동자들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어 취재내용을 관련당국에 넘긴 후 수백 명의 노동자들이 풀려나고 소년 노동자들로 운영되던 태국의 새우가공 공장이 단속되기를 기다렸다. 이들이 무사히 가족과 상봉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기자들은 기사를 송고하기 시작했다 한다. 여기자들의 마음이 “감동”이다.


기자들은 누구나 특종을 하고싶어 한다. 특종을 취재하고 나면 기자들은 하루빨리 내보내고 싶어한다. 정보가 새나가 특종이 자칫 낙종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이 피땀 흘린 기사가 어서 지면에 실리는 것을 고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여기자들은 18개월동안 인니, 미얀마 등의 취재를 끝내고 기다리고 기다렸다. 자신의 목숨이 소중하면 다른 사람의 목숨 역시 소중한 것, 이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사람의 마음이 사라지고 사람이기를 포기한 마음을 대할 때가 있다.

지난 12일부터 서울 예술의 전당 디자인미술관 앞에서 장국현 사진작가 ‘천하걸작 사진영송’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작가는 경북 울진군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에서 사진 구도에 방해된다고 200년 넘은 금강송을 포함해 수십그루의 나무를 무단으로 잘라냈다. 금강송 무단벌목으로 얻은 사진으로 전시에 판매까지 하고 있는 작가는 이 일로 약식기소돼 500만원 벌금형에 한국사진작가 협회에서 제명됐을 뿐이다.

오랜 세월 싹이 트고 어린 나무에서 어른 나무가 되고 200살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햇빛과 바람과 폭설과 폭우를 이겨냈는 지 모른다. 나무가 보낸 인고의 세월을 일순간에 싹둑 잘라낸 그에게는 나무가 피 흘리는 것이 보이지 않았나보다. 그 귀한 금강송을 비롯 잘라낸 나무는 어디에 팔았을까.

지난 1994년 플리처상 수상작인 캐빈 카터의 ‘아이와 독수리’는 지금도 논란에 휩싸인다. 뼈만 앙상한 아이가 죽기를 기다리고 있는 독수리, 아이를 안지 않고 아이를 노리는 독수리를 찍은 그에게 전세계적으로 비난이 쏟아졌고 이후 그는 자책감에 쌓였다가 시상식후 한달이 못되어 자살하고 말았다.

2012년 뉴욕 지하철역 선로에 고의로 떠밀려 떨어진 한기석씨가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는 지하철을 바라보는 뒷모습, 뉴욕포스터 커버에 실려 한인사회의 분노를 일으킨 사진이다. 프리랜서 기자가 찍은 이 사진은 지금도 논란에 휩싸이고 뉴욕포스터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들은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전에 얼른 팔을 내밀어 아이를 안아 올려야 했고, 여럿이 달려와 추락한 이의 손을 잡아 끌어올려야 했다. 아무도 이들에게 순발력 강한 기자정신, 근성을 지닌 특종기자라고 하지 않는다. 자신이 살릴 수 있는 생명이 눈앞에서 죽는 것을 보면서 받은 특종이 무슨 소용이며 그렇게 얻은 작품이 무슨 예술적 가치가 있는가.

특종이나 예술보다도 생명이 먼저인 세상, 이들의 행위가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을 보면 아직도 이 세상에는 상식적인 사람들이 비상식적인 사람보다 더 많다. 새삼 생명존중 사상을 깨닫는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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