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월절

2016-04-18 (월) 최효섭 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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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2일은 유대인 최고의 명절인 유월절(逾月節 Passover)이다. 유월이란 ‘지나간다’ 혹은 ‘건너간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400년 동안이나 노예살이를 하던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이집트인의 장자를 죽이는 무서운 재앙이 내렸는데 죽음의 천사가 이스라엘 사람의 집 앞은 거저 지나갔다는 고사에서 유월절이란 이름이 나왔다. 결국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해방 기념일이다.

유대인들은 지금까지 3,000년 동안 유월절을 지키고 있다. 유월절이 되면 저녁 식사 때 장자가 아버지께 묻는다. “아빠, 유월절이란 말이 무슨 뜻이죠?” 그러면 아버지가 이스라엘 조상들이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받은 고통을 이야기 해 주고, 그 날 식탁에는 누룩이 들지 않은 맛없는 빵과 양고기를 먹음으로서 유월절의 전통적인 만찬을 갖는다.

지난날의 고통을 기억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래서 한국인은 일제(日帝)가 강요한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억하려는 것이고, 가해자인 일본은 이 못된 과거를 기억에서 말소하려는 것이다. 기독교의 신학을 정립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유월절 양’으로 설명하였다. 즉 예수를 스스로를 희생의 제물로 바침으로서 인류를 구한 해방자로 본 것이다.


뉴저지 주 크레스킬의 경찰서장 스티브 릴리스 씨의 취임식에서 시장은 이렇게 그를 소개하였다. “릴리스 서장은 정확한 관찰력과 신중한 판단력을 가졌습니다. 그는 이 마을의 아이들과 노인들까지도 많은 걱정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것입니다.” 정신 분석 학자 에릭 프롬은 ‘현대인의 3대 새 종교’를 지적하였다. 그것은 무한정의 생산, 절대의 자유, 무한한 행복 추구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많이 만들어 많이 소유하고 마음껏 즐기자”는 것이 현대인의 삼위일체(三位一體) 신앙이라는 말이다. 그것이 진정 인간 해방이겠는가?

Religious Report 지가 미국의 기독교인들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기독교인들이 변화를 싫어하는 경향이 많고, 그 이유로서 “이전에 시도해 보았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한국도 세계도 온통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있다. 사실 그런 외침은 오래지만 왜 해방이 되지 않을까? 그것은 단순히 지배구조의 욕심 때문이다. 욕심이 죄를, 죄가 멸망을 낳는다는 바울의 말은 여전히 진리이다. 해방은 욕심의 해방으로부터 이루어질 수 있다.

제1세기 비스기아 총독 폴리니는 로마 황제에게 이런 보고서를 올렸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정탐꾼을 넣어 감시하였습니다. 그들은 낯선 사람이 와도 따듯하게 환영하고, 노예나 여자도 가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정탐꾼의 말에 하면 이들 기도교도들이야 말로 정말 해방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였다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기도교인들은 매우 평화로우며 체포할만한 이유를 찾을 수 없습니다.”

한 성서학자는 “신구약 성경에 ”두려워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 366회 사용되었다고 한다. 1년의 날수와 같다. <해방>이 성경의 구호임을 알 수 있다.

해방은 풀 해(解)와 놓을 방(放)을 쓴다. 무엇으로부터 풀려 놓이는 것이 해방이다. 미움과 화로부터 내 마음이 해방되어야 한다. 뼈에 사무치게 괴로운 일, 꽉 막힌 것 같은 답답한 사연, 심장을 꿰뚫는 아픔, 죽이고 싶도록 화가 치미는 분노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곰곰이 생각하면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내가 먼저 웃고, 내가 먼저 풀어지면 훨씬 쉽게 고민의 구덩이에서 해방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봄이다. 대자연이 힘차게 새 출발하고 있다. 남 몰래 흘리던 눈물도, 혼자 내뿜던 한숨도, 긴 설명이 필요한 억울한 일부터도 해방을 받아야 한다. 봄은 해방의 계절, 시원하게 어두운 올무에서 벗어나 새 날을 맞자.

<최효섭 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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