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르크의 길가메시 왕

2016-04-15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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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KBS-TV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14일 막을 내렸다. 16부작 동안 매회 최고 시청률을 자랑하며 중국 누적조회수 20억 뷰를 돌파하더니 27개국에 판권이 팔려나가는 등 한류 붐을 부흥시켰다.

유시진(송중기 분), 강모연(송혜교 분), 서대영(진구 분), 윤명주(김지원 분) 네 사람을 중심으로 사랑과 사명감, 인간의 존엄을 다룬 ‘태양의 후예’는 군대식 말투인 ‘~지 말입니다’ 가 신문기사나 광고카피에 등장할 정도로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 드라마의 배경인 가상국가 우르크에 특전사 알파팀이 파병되고 해성병원 의료팀이 의료봉사를 나온다. 실제로 기원전 3,000년 우르크(Uruk) 국이 있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연 수메르인이 현재의 이라크 남부 유프라테스강 서안에 세운 우르크는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300Km 떨어진 곳이며 지구라트 유적지에는 우르크의 주신이었던 사랑과 전쟁의 여신 이난나를 위해 세운 신전터가 남아있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서 인류 최초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으킨 우르크에 길가메시 왕이 있었다. 우르크 제1왕조 제5대 왕인 길가메시는 중국의 진시황보다 훨씬 먼저 영원불멸의 삶을 살고자 했다.

기원전 221년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은 사복을 비롯 수많은 이들을 불로초를 찾아 먼 나라로 보냈다. 사복은 돌아오지 않았고 불로불사약도 구하지 못했다. 결국 진시황은 폭군으로 역사에 남고 진나라는 3대 15년만에 유방에게 망하고 만다.

길가메시 왕은 인간인 아버지, 여신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기에 유한한 생명을 지닌 인간의 숙명을 벗어나고 싶었다. 어머니를 졸라 지구를 다스리는 신으로부터 에덴동산 생명의 나무 열매를 먹으면 영생불멸한다는 비법을 알게 된다. 그는 전사 엔키두를 앞세워 고향을 떠나 힘들게 생명의 나무 앞에 다다른다. 그러나 무서운 문지기와 싸우다 진흙덩어리로 돌아가는 엔키두를 보고 도망쳐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 보니 생명의 나무는 사라지고 없다. 혹은 갑자기 나타난 뱀이 불로초를 먹어버렸다는 버전도 있다.

아무튼 그는 여기서 대오각성, 자녀 귀한 줄 알고 아내를 보살피고 현생을 사는 것이 영원의 생이라는 가르침을 얻는다. 우르크로 돌아온 길가메시 왕은 126년간 나라를 잘 다스리다가 죽는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내세와 영혼을 믿었지만 수메르인들은 길가메시 왕처럼 내세보다는 현세를 중요하게 여겨 현세에서의 행복을 빌었다.

이런 삶의 모습이 그림으로 전해지다가 설형문자가 되고 이 설형문자로 된 함무라비 법전에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그 유명한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렇게 신화로 알려지던 길가메시 왕의 무덤이 2003년 이라크 우르크 지방에서 발견되어 실존인물임을 뒷받침 했다고도 한다.

4,500년전 우르크에서 탄생한 ‘길가메시 서사시’는 우정과 사랑, 삶과 죽음 등 인생 전반에 대한 문제가 다뤄진 인간의 가장 오래된 이야기 중 하나이다. ‘태양의 후예’ 작가가 이라크의 고대 우르크 국을 떠올리고 우르크란 가상국가 이름을 쓴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인류 최초의 문명을 일으킨 이 지역이 암석만 남은 척박한 땅이 되어버린 현실, 그것에는 인간의 탐욕이 있었다는 것이다. 자연에서 식량과 삶의 지혜를 얻었지만 받기만 하고 휴식을 주지 않았고 베풀지 않은 것은 아닌가하는 반성이 있어야 한다.

한편, 유시진 대위가 총 맞고 부상당하고 폭탄이 터지는 속에서 번번이 멀쩡하게 살아나는 드라마를 보며 ‘절대권력이나 평범한 인간이나 죽음은 누구나 피해갈 수 없다.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워하는 사람이 더 빨리 죽는다’는 길가메시 서사시 한 대목을 보는 듯하다. 용감한 사람은 총알도 빗겨가나봐.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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