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탐소실(大貪小失)의 역설

2016-04-09 (토) 이태상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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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린이들의 지능과 감성은 물론 성품도 어른들 뺨치도록 조숙해가는 것 같다. 아니 우리도 어렸을 적엔 그렇지 않았는가. 구제불능일 만큼 타락한 어른들을 닮아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일곱 살짜리 나의 외손자 일라이자가 태권도 클라스 견학을 갔다 오더니, 레슨을 받지 않겠단다. 주먹과 발길질을 하면 다른 아이다 다칠까봐 그래서란다. 그러더니 좀 아쉬웠는지 할아버지가 보고 난 종이 신문을 한 장씩 쫘악 펴서 양 손으로 잡으라더니 손가락, 다음엔 주먹 그리고 발로 ‘야ㅡ앗’ 소리를 신나게 질러가면서 신문지를 격파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방안 가득히 ‘산산이 부서진’ 나무 조각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긁어모아 비닐 쇼핑백에 잔뜩 넣어 묶은 종이 공들을 농구나 축구 볼로 열나게 한참 던지고 차고 노는 바람에 나도 숨이 차면서도 무아지경의 금쪽같은 시간을 즐겁게 같이 보낼 수 있었다.
그룹 ‘시크릿’의 리더 전효성(27)의 두 번째 솔로 미니 앨범 ‘물들다: 컬러드’의 쇼케이스가 열린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홍대앞 예스24 무브홀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솔로 앨범을 발표할 때마다 성장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숙제를 검사 받는 기분도 들고 배우는 것들이 많다. 이번 앨범은 행복이라는 데 포커스를 맞춰 행복을 찾아가는 모습을 담고자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또 이렇게 말을 이었다.


“작곡가 오빠들이랑 이야기를 하는데 행복의 기준이 성공이 되면 절대 행복할 수 없다고 하더라. 그 이야기를 듣는데, 머리를 ‘띵’ 맞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명예욕이 커 성공하고 싶고 행복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성공을 행복의 기준으로 삼으면 사소하지만 소중한 것들을 잃고 살게 될 것 같았다.

맛있는 아침과 햇살, 이렇게 쇼 케이스를 여는 것 자체가 행복인데 말이다. 순간 순간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 미래의 행복이지 않나 한다.”
내 주위에서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뛰던 40대 50대 한인들이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 1970년대 영국에 살 때를 떠올리게 된다. 런던 같은 큰 도시는 좀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동네 작은 가게들은 일요일엔 문을 닫고 주중에도 수요일과 토요일엔 아침 9시나 10시부터 정오까지만 영업하며 평일에도 오후 5시면 문을 닫는다.

물론 사회보장제도가 잘 돼 있기 때문이겠지만 사람들이 돈 몇 푼 더 버는 것보다 ‘삶의 질(quality of life)’을 더 중요시해서 인지, 여가 시간을 즐기는 것 같다. 동굴 답사니, 조류 탐사니, 독서 클럽이니, 브리지(bridge) 게임 모임이니, 수도 없이 많은 동호회를 조직하거나 아니면 가족 단위 또는 이웃간의 친목으로 샌드위치와 보온병에 담은 차를 준비해 공원이나 경치 좋은 곳으로 피크닉 소풍을 간다.

내가 1980년대 미국 뉴저지 주 오렌지 시에서 가발가게를 할 때 매년 여름 휴가철이면 한 두 주 문을 닫고 여행을 다녀오면서 매상이 많이 줄까 걱정을 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별로 상관이 없었다. 가발이 필요한 사람들은 가게 문 닫기 전이나 다시 연 다음에 사가더라는 얘기다.
흔히들 먹기 위해 사느냐 아니면 살기 위해 먹느냐 또는 일하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일하느냐고 하지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우린 모두 정작 어린애들처럼 순간순간 아무 거라도 갖고 재미있게 놀기 위해 산다고 해야 하리라. 왜냐하면 복은 언제 어디에나 작은 것에 있기 때문이다. 티끌 모아 태산(Many a little makes a mickle)이라고, 큰 것만 탐내다가는 작은 것도 다 다 잃게 되는 대탐소실(大貪小失)이 될 테니까 말이다.

<이태상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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