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서창(西窓)

2016-04-02 (토) 최원국(비영리기관 근무/ 팰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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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창으로 보는 세상이 우리의 삶이다. 동남향을 선호하는 한국 가옥과 달리 미국은 서북향 집이 많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6층 건물은 거실 창문이 서향으로 나있다. 겨울철이나 흐린 날씨에는 집안이 어두워 오전에도 실내등을 켜야만 한다.

그런 날이면 나는 우중층한 아침 실내 분위기에서 벗어나고 싶다. 하루의 생활을 밝은 햇빛과 같이 산뜻한 마음으로 시작 했으면 한다. 오후부터는 해가 질 때까지 집안이 환해진다. 몸도 가벼워지고 마음까지 맑아 진다

저녁때는 나는 창문을 통하여 지평선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곤 한다 매일 보는 노을이지만 볼 때마다 아릅답고 경관이 달랐다. 우주의 신비함을 항상 느끼곤 한다.
얼마 전에는 기록적인 폭설로 온 천지가 하얗게 변했다. 도로에는 승용차가 눈 속에 갇혀있고 나무 가지는 흰색으로 변했다. 오래간만에 보는 하얀 세상이었다.


전자 기기에서 발산하는 전자파를 제거한다고 나는 집 안에 화초를 기르고 있다. 실내 공간이 넓지 않아 부피가 적고 생명력이 강하고 꽃이 많이 피는 게발 선인장이 좋아 서향 창문에 놓았다. 일년에 한번 크리스마스 시즌에 핀다고 하여 그 선인장을 크리스마스 선인장이라 부르기도 한다. 야간에는 산소 발생량이 많아 실내 공기 정화겸 관상용으로 키우고 있다. 우리 부부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우리 집의 유일한 생물체다

연말에 나는 얼마 동안 집을 비우게 되었다 출발하기 전에 나는 화초에 물도 주고 떠났지만 겨울 추위에 죽지 않을까 신경이 쓰였다. 걱정해서 일까 집에 돌아와 보니 그 선인장은 무사히 잘 자라고 있었고 주인을 반기기라도 하듯 꽃망울까지 맺혀 있었다. 신통하게 때를 알고는 연말쯤에 진분홍꽃이 화려하게 피었다.

큰 줄기가 둘인데 하나는 먼저 피었고 다른 한 줄기는 지난번에 안 피더니 집에 온 나를 반갑게 맞이 하는 듯 삼층으로 된 진분홍 꽃이 만개한 것이다. 둥근 화분이 진분홍꽃으로 덮였다.

해질 무렵이면 나는 창문으로 낙조를 보는 습관이 생겼다.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를 보고 있노라면 잔잔한 호수같이 내 마음이 평온해 지며 피로가 사라진다. 어떻게 멋있는 삶으로 살까 생각하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곤 한다.

지난번에 온 눈이 석양에 반사되면서 천지가 붉은 노을이 되었다. 만개한 게발 선인장 꽃이 더 요염하게 보였다. 거실은 붉은 꽃으로 채색된 듯 화려했다. 온 세상이 한폭의 스채화였다. 마음이 저려 왔다.

눈부시도록 찬란한 아침햇살만이 장엄한 것이 아니었다. 일몰도 일출만큼이나 경건하고 찬란했다. 중천에 떠있는 태양보다 서산에 지는 석양이 더욱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우리의 생애에서 저녁노을같이 아름다운 삶으로 산다면 우리 인생은 위대한 예술작품이 될 것이다. 서창으로 보는 노을 같은 삶이 우리가 바라는 삶이 아닐까?

<최원국(비영리기관 근무/ 팰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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