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추억속의 낭만클럽

2016-04-02 (토) 문용철(낭만파클럽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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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파클럽이 창립된 지 벌써 14년이 흘렀다. 이 조직이 특별히 이 봄에 생각나는 것은 왜 일까? 낭만파 클럽은 메마른 사회를 훈훈한 인정이 넘치는 사회로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모임이다.

회원들은 인간의 착한 심성을 바탕으로 서로 교감하며 국제적인 감각을 가지고 문화예술을 사랑하며, 이따금 멋도 부리고 웬만하면 따지지 말고, 차라리 내가 손해 본다는 슬로건으로 친분을 쌓아 왔다.

우리 세대는 파란만장한 격동기를 겪으며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 살아오신 부모들의 덕으로 유년기를 보내고 여기 미국까지 와서 큰 축복을 누리며 살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우리는 한국에서 젊은 시절 있든, 없든 나름대로 그 시대의 풍물과 문화를 즐기며 성장했다. 70년대에는 명동의 호프집을 드나들며 전통 독일의 토르트문트 생맥주로 목을 축이면서 젊음을 구가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 세상은 점점 변해가고 돈으로 사람을 저울질하는 세상으로 바뀌면서 사람들의 마음에서 인정이고 낭만이고 모두 사라져 버렸다.

이를 벗어나 보따리를 싸고 무작정 미국을 향한 많은 한인 이민자들은 너도 나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맨몸으로 험한 일도 마다하고 모두 생존의 일터에 뛰어 들었다. 내 경우도 78년 이민 올 때 미국에 온답시고 보따리에 챙겨온 명동 싸롱 구두 10켤레를 제대로 신어보지도 못하고 모두 쓰레기장으로 보냈다.
그래도 아이들 둘 낳고 열심히 장사해서 이제는 건물사고 롱아일랜드에 집 사고 다니는 교회에서 집사로도 승진했으니 이 얼마나 위대한 성공인가?

그러나 한인사회도 언재부터인지 돈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식으로 도덕불감증이 팽배해졌다. 그 때 박종호 감독이 메마른 한인사회를 낭만적으로 바꾸어 보자고 제안했다. 나도 그 취지에 동참해 우리 뜻과 맞는 사람들을 모아 낭만의 둥지를 틀게 됐다.

우리는 그동안 시와 음악, 그리고 근대역사에 남은 윤동주 같은 낭만적 시인의 발자취를 찾아 헤매고 주옥같은 시 낭송 등으로 낭만을 즐겼다. 작으나마 회원들이 오랫동안 추억을 기억하면서 만나야 되는 이유일 것이다. 따스한 봄이 왔다. 연분홍치마가 휘날리는 이 봄날에 잃어버린 마음의 여유와 낭만을 찾아 멋진 삶을 계획해봄은 어떨까?

<문용철(낭만파클럽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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