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봄은 왔건만…’

2016-04-04 (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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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4월 4일)은 청명이다.

날이 풀리고 화창해진다는 절기다. 청명에는 봄꽃 찾아가 술잔을 나누고, 새 풀 밟아보는 풍습이 있었다. 봄꽃놀이의 유래인 ‘답백초(踏白草)’다. 그리고 춘주라 불리는 청명주도 빚었다. 술이 완성되는 마지막 날 위에 뜬 것을 걷어낸다. 그러면 이름대로 깨끗하고 맑은 술이 된다. 이렇듯, 우리의 선조들은 흥과 신바람의 민족답게 기운찬 일들을 찾아 했다. 마음마저 맑고 밝아지도록 말이다.

지금은 꽃철이다.
흰 벚꽃과 목련. 노란 개나리, 수선화와 튤립…. 어딜 가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봄꽃은 예나 지금이나 반갑다. 이젠 봄길 따라 꽃향기 타고 온 봄꽃천사가 화사한 봄이 무르익고 있다. 봄은 꽃을 볼 수 있어 좋다. 따스한 봄바람은 우리를 들뜨게 한다, 향긋한 봄볕은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마저 설레게 한다. 이렇게 봄은 우리를 품고 어루만지고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으나 봄이, 봄 같지 않구나!’ 이 말은 중국 한나라 원제 때 절세미인 왕소군이 북방 흉노족의 오랑캐 왕의 볼모로 잡혀 가 비극적인 삶을 산 사실을 옮겨 적은 당나라 동백규의 ‘소군원’에 나오는 글귀(‘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으니 봄이 왔으나 봄이, 봄 같지 않도다’)다.

4월이다. 그야말로 봄, 봄이 왔다. 하지만 올봄은 봄 같지 않다. 흉노의 땅도 아닌 뉴욕한인사회가 바로 그렇다. 지금 한인들은 봄을 봄처럼 즐기지 못하고 있다. 지속적인 불황으로 ‘경제의 봄’이 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는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만나는 사람마다 불안한 기색이다. 한 때 잘나가던 업소가 폐업 위기란다.

건물업주들도 마찬가지다. 임대를 놓아도 나가지 않아 매물로 내놓았지만 입질조차 없다며 한숨이다. 이럴진대 임대료를 내는 업주들의 고충은 새삼 말하지 않아도 짐작될 일이다. 매출이 절반이상 줄어든 자영업자 대다수는 장기불황으로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다.

거기에 날씨마저 변덕스럽다. 춥고, 비가 잦은데다 눈 소식까지 있다. 물론, 흑자운영의 고수(?)도 있다. 하지만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경기는 여전히 봄과는 거리가 먼가보다.
어찌 경제뿐이랴! 뉴욕총영사 ‘갑질 논란’ 의혹의 실체도 좀처럼 드러나지 않고 있다. 조사를 받고 돌아온 총영사는 해명이나 변명도 없이 그냥 지켜보란다.

시간이 다 지나면 사실대로 밝혀진다며 답변을 회피한다. 한인이면 누구나 의혹의 실상이 궁금하다. 그러니 사실이면 사과로 책임지고 아니면 그런 일 없었다고 말하면 그뿐이다. 그런데 시간 끌기(?)로 또 다른 의혹만 키우고 있다. 참으로 책임 없는 행동인 셈이다.

뉴욕한인회 사태는 봄은커녕 잔인한 4월이다. 한인회관 99년 장기리스를 체결한 민승기 전 회장은 “계약을 비밀리에 체결한 것에 대한 것은 사죄를 드리겠지만, 공금을 횡령했다는 음해를 계속한다면 항소도 불사 할 것”이라고 오히려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면서도 리스체결 후 미리 받은 25만 달러 사용처 증빙서류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젠 한인회장이 아니라며 완전히 ‘나 몰라라!’식이다. 그러니 현 한인회가 밝힌 개인 전용한 돈 22만 달러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취할지가 궁금할 따름이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현 집행부는 체납된 부동산세 해결을 위해 60만 달러를 추가로 대출 받기로 했다. 그러면 한인회관을 담보로 108만 달러의 빚을 떠안게 된다. 한인회관은 한인 모두의 재산인 만큼 결국 한인 모두를 빚쟁이로 만드는 셈이다.

이처럼, 한인사회의 올봄은 ‘봄은 왔건만 봄이, 봄 같이 않아서’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다. 하지만 슬퍼할 수만 없다. 이제 가장 잔인한 4월은 우리 모두가 여기서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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