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2016-04-01 (금) 민병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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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대중음악계의 전설적인 록밴드 롤링스톤스가 쿠바에서 역사적인 첫 공연을 열정적으로 치러냈다. 1959년 쿠바 혁명이후 서구 록밴드의 음악을 몰래 들어야 했던 쿠바 팬들은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

1962년 결성되어 단 한번도 해체 없이 여전히 정열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장수 록 밴드의 멤버 대부분은 70~80대다. 리드 싱어 믹 재거는 여전히 두터운 입술에 얼굴에는 주름이 자글자글 하지만 머리에 띠를 두르고 열정적으로 노래하며 쿠바 개방의 문을 열었다.

지난 21일에는 서울에서 ‘서프 뮤직’의 전설 비치 보이스가 처음으로 한국 공연을 하여 올드팝 팬들의 추억을 되살렸다. 7명의 ‘바닷가 노인들’은 과거의 히트곡들로 1960년대를 불러냈다.
4월에는 ‘마이 마이 마이 딜라일라’로 가수 조영남이 번안해 큰 인기를 얻었던 ‘딜라일라’의 원조 가수 톰 존스(76), 5월에는 70~80년대 남성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팝의 여신 올리비아 뉴톤 존(68)이 한국 공연을 한다.
세계적인 팝스타들이 잇달아 한국 공연을 하고 최근 수십년 전 활동하던 한국가수들도 컴백무대를 갖고 있다.


35년만에 가수로 돌아와 4월부터 전국 투어에 나선다는 가수 박인희, ‘휘파람을 부세요’의 가수 정미조도 대학교수와 화가 생활에서 37년만에 가수로 돌아왔다. 1977년 ‘사랑만은 않겠어요’, 1982년 ‘아파트‘로 전국토를 출렁시킨 가수 윤수일도 `로큰롤 할배'가 되어 4월 무대에 섰다.

올드 팬을 위해 무대에 섰다는 노장가수들은 한결같이 “팬들을 만나 기쁘고 다시 무대에 서서 노래하여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현재 한국의 음반시장 소비층이 10대, 20대가 주축을 이루다보니 50대 이후가 들을 노래가 마땅하지 않아선지 기획사들은 과거 추억의 가수들을 집합 시키고 있다.

그 노래를 듣는 우리들은 행복한가? 몇 년 전 세시봉 출신 가수인 윤형주, 김세환, 송창식, 조영남 등이 7080 바람을 일으킨 적이 있다. 그들은 계속 노래를 해왔었고 숱 없는 머리카락, 골 패인 주름, 약간 나온 배 등 늙어가는 모습을 방송이나 무대를 통해 간간이 보여주었기에 큰 거부감이 없었다. 그저 우리와 함께 늙어가는구나 했다.

그런데 요즘 갑자기 과거에서 튀어나온 가수들은 좀 생경스럽다.
70년대 경춘선 안, 청평 유원지 MT에서 부르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노래가사에 들리던 통기타 소리, 짝사랑에 힘들어하며 혼자 노천극장에 앉아 부르던 ‘휘파람을 부세요’, 젊은 날의 윤수일을 TV로 보면서 “어디서 이런 미남을 후리지?” 하던 친구의 한마디에 다들 뒤로 넘어가던 추억은 그대로 있는데...

긴 생머리에 청순한 얼굴과 청아한 목소리, 날렵하고 멋진 젊은이의 모습은 어디로 사라지고 마르고 주름지고 퉁퉁한 모습의 노인이 되어 돌아온 그들, 목소리는 과연 똑같을까? 발성은 같되 어색하고 배에 힘이 빠져 듣는 이를 서글프게 하지 않을까.

이 시점에서 왜 외국가수들은 줄지어 내한공연을 하는데 한국가수는 안 어울리니 마느니 하느냐 하겠지만 워낙 외국인들은 늙어가는 모습을 자연스레 보여주는 풍토다 하면 변명이 될까. 작년에 방영된 토토즐처럼 옛 가수들이 한꺼번에 잠시 추억을 되살려주는 것은 좋지만 계속 가수 활동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과거는 과거대로 남겨두어야 한다. 젊은 시절의 방황, 미련, 아쉬움, 지나간 청춘은 박제된 대로 내버려두라. 20대, 30대, 40대 나름 열심히 살았을 것 아닌가. 60대, 70대도 열심히 살 거고, 지나간 것보다는 다가올 미래를 궁금해 하고 기대하는 것이 정신건강에도 좋다.

젊음도 명성도 사라진 이들이 과거의 향수에 매달려서 발목을 잡는 것은 별로 반갑지 않다. 모르지 또, 이율배반적으로, 자의든 타의든 긴 은둔생활에 들어간 가수 라훈아를 무대에 불러 세우면 관심을 가질 지도…

<민병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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