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쿠바, 잘 지냈습니까?”

2016-03-25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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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쿠바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아바나 공항 도착 전 트위터에 “쿠바, 잘 지냈습니까?”라고 다정다감한 인사를 건넸다.오바마는 미 대통령으로 88년만에 2박3일간 쿠바를 공식방문,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과 정상회담을 했다.

지금으로부터 54년 7개월 전인 1961년 1월 3일 오전 1시 아바나 주재 미국 대사관에 쿠바 외교부로부터 한 장의 외교문서가 날아들었다. ‘48시간 이내에 대사관 직원을 11명 이내로 줄이라’는 것. 사실상 대사관을 폐쇄하라는 통첩이었다. 이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단교를 결심했고 엄격한 경제봉쇄에 돌입했다. 17일후인 1월 20일 아이젠하워에 이어 존F 케네디가 미 제35대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생했다.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이후 상업교류 활성화, 여행 제한 해제 등 부분적으로 재제 조치가 완화되었지만 금수조치, 관타나모 반환, 인권 등 주요 3개 현안을 해결하기에는 아직 요원하다.


요즘 ‘카리브해의 진주’라 불리는 쿠바에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그곳에 가면 올드 카, 페인트가 벗겨지고 색이 바랜 건물들, 물자부족과 궁핍 속에서도 열정적인 살사춤을 추는 사람들, 아바나의 골목을 거닐면 노인 뮤지션들이 연주하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 나타날 것같다.

쿠바를 찾는 사람들은 미국과 서구의 기업들이 진출하여 새 건물을 세우고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기 전, 날 것 그대로의 쿠바를 보고자하는 마음이 크다고 한다.
쿠바에는 가볼 만한 곳이 많다.

1492년 크리스토퍼 컬럼버스가 신대륙이라고 배를 댄 곳은 쿠바의 바라코아였다. 신대륙 발견이후 유럽인들의 진출이 이어졌고 16세기초부터 19세기까지 스페인 식민지가 되었다. 스페인은 아프리카에서 흑인노예 100만명을 데려왔고 이들과 스페인과의 혼혈인 등이 대부분의 쿠바 국민을 구성했다.

그리고 1958년 카스트로와 사회주의혁명을 이끈 체 게바라가 있다. 쿠바의 높은 지위에 오르고도 볼리비아 반정부혁명을 위해 달려갔다가 그곳에서 사망한 그의 자취를 찾아 세계 젊은이들이 몰려든다.

또 어네스트 헤밍웨이가 있다. 스스로 ‘쿠바의 입양아’라 했을 정도로 쿠바의 바다와 청새치 낚시, 강한 햇빛, 칵테일, 쿠바인들을 사랑했던 그는 아바나 근처에 살면서 소설 ‘노인과 바다’를 썼다. 헤밍웨이는 쿠바 혁명이후 1960년 미국으로 추방되었는데 그가 오랜기간 살았던 집은 헤밍웨이 박물관이 되었다.

이러한 강대국에 짓눌린 쿠바의 역사와 문학, 음악, 춤 등 문화를 알게 되면 그곳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가난하고 불편해도 묵묵히 삶을 이어온 사람들, 그들은 삶을 그저 견디고 견뎌온 것이다.

쿠바는 우리와도 인연이 있다. 한인 이민은 1921년 멕시코 메리다 에네켄 농장을 떠나온 288명의 에네켄 농장 노동자들이 마나티 항구에 도착하면서 시작됐다. 쿠바 전역에는 현재 1,000여명의 한인 후손들이 살고 있다.

오바마가 쿠바를 방문중인 22일 벨기에의 브뤼셀 공항과 지하철역에서 동시다발 테러가 발생했다. 유럽각국은 물론 미국에 보안이 강화되었다. 뉴욕시경은 시내 전 지역에 순찰인원을 늘리고 공항, 터널, 지하철역, 주요 빌딩에 테러대응요원을 추가했다.

아침에 눈 뜨면 세계 어느 곳에선가 전쟁이나 테러가 일어나고 매일 죽는 사람이 생긴다. 한쪽에선 화해의 악수를 하고 다른 한쪽에선 분쟁의 불씨를 제공한다. 전쟁과 평화가 공존하는 인류의 역사에서 사람들은 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있는 지도 모른다.
서반구의 유일한 공산국가 쿠바가 55년의 냉전을 청산했다. 1994년 지미 카터 대통령에 이어 현직 미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은과 악수할 화해 무드는 언제 조성될까. 53년 7월 27일 휴전 이후 63년이 되어간다.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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