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산소 하나 수소 둘!’

2016-03-21 (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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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산소와 수소가 결합된(H2O) 분자다. 색이 없고 맛이 없고 향도 없다. 그저 투명한 화합물이다. 하지만 생명유지에 꼭 필요하다. 우리 몸의 65-75%는 수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살아가는 데 물이 필수적인 이유다. 사람뿐만 아니다. 어류, 조류, 가축, 식물 등도 마찬가지다. 모든 생명체는 물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법이다.

물은 참 신비하다. ‘물은 답을 알고 있다’의 저자는 물은 알면 알수록 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창세기를 보면 가장 먼저 만들어진 창조물도 물이다. 그 물이 나뉘어 하늘과 육지가 나온다. 물의 존재는 생명의 전제조건이자 지표인 셈이다.

물은 창조의 원천이다.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는 물을 만물의 근본으로 보았다. 모든 것은 물에서 시작되어 물로 되돌아간다고 주장했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도 “물은 만물의 어머니”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물은 모든 생명의 원초적 물질과 바탕인 것이다. 양수, 침, 피, 정액 등과 비교될 때 물은 생명의 액체이자 근원인 셈이다.


물은 상선(上善)을 상징한다. 노자(老子) 이성(易性)에는 상선약수(上善若水)란 표현이 나온다. 지극히 착한 것은 마치 물과 같다는 뜻이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아니하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임하니 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선이라는 의미다.

물은 참으로 묘하다. 옛날 신성한 제사에는 현주(玄酒)를 올렸다. 현주는 검은 술이 아니다. 새벽에 우물에서 처음 길은 맑고 깨끗한 물이다. 새벽마다 장독대에 떠놓고 천지신명에게 빌던 그 정화수다. 신을 움직이게 하는 최상의 재물이 정화수였던 것이다.
우리가 자주 쓰는 속담 중에도 물과 관련된 것이 많이 있다.

아마도 ‘열 길 물속은 훤히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란 표현이 으뜸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우리가 살면서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가 참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도 자주 쓰는 표현이다. 사람들이 위급한 때를 닥치면 무엇이나 닥치는 대로 잡고 늘어지는 모습을 빈번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물에 빠진 것 건져 놓으니까 내 봇짐 내라 한다’도 많이 쓰는 편이다. 남에게 은혜를 받고서도 그 공을 모르고 도리어 그 사람을 나무라고 원망하는 한인들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불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물이 깊어야 고기가 모인다’ 등도 자주 쓰인다. 한인사회에 어떤 위험이라도 헤아리지 않고 뛰어드는 한인, 우유부단한 성격의 한인 그리고 덕이 큰 한인들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일 게다.

물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명의 보고다. 하지만 주변을 살펴보면 물의 가치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흔하디흔한 것이 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말함이다. 그들은 ‘물 쓰듯 한다’라는 말처럼 물을 너무나 헤프게 쓴다. 그만큼 물을 낭비하고 물에 대해 소중함을 잊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물은 언제나 풍족하게 쓸 수 있을 것으로 믿기도 한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아직도 세계 인구의 20%는 안전한 물을 사용하지 못한다. 80여개 국가는 건강과 경제가 위협받을 정도로 물 부족을 겪고 있다.

뿐만 아니다. 매일 3,000여명의 어린이가 세계 곳곳에서 부족과 물과 오염된 물로 숨져가고 있다. 오죽했으면 이미 1992년 유엔총회에서 매년 3월22일을 ‘세계 물의 날’로 지정했겠는가.

지구의 71%는 물로 덮여 있다. 그 중 바닷물이 97.5%다. 담수가 2-5%고 빙설이 1.75% 그리고 지하수가 0.75%다. 이중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물은 0.01%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이렇게 귀한 물을 아낌없이 펑펑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내일(22일)은 세계 물의 날이다. 이날을 계기로 물의 소중함을 깨닫자. 물을 아끼고 보호하려는 의식도 가다듬자. 더불어 물은 이제 더 이상 자연이 거저 주는 선물이 아님을 새롭게 인식하자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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