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불행을 희망으로 바꾸는 생명

2016-03-19 (토)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크게 작게
사람의 생명이란 대우주보다도 귀한 가치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우주가 먼저 존재했고 나중에 생명이 탄생했어도 생명인 인간이 대우주를 인식하였기에 우주의 존재는 가능케 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 생명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누가 대우주를 인식하고 하나님을 논하겠는가. 여기에 인간 생명의 가치가 있음이다.

창조와 진화의 인식도 인간이기에 가능한 거고 인간 이외의 다른 생명체, 즉 다른 동물과 식물들은 인식자체가 있다 해도 표현의 방법이 없기에 인간만이 유일무이한 대우주를 말하고 창조와 진화를 논할 수 있는 존재라 할 수 있겠다. 만약, 대우주가 존재해 있음에도 인간이란 존재가 없었다면 우주의 존재를 누가 알 수 있으랴.

2010년 8월5일, 남아메리카 칠레의 산호세 구리광산에서 붕괴사고가 일어나 지하 700m에서 구리를 캐던 광부 33명의 생명이 70만톤의 암석과 토사와 함께 매몰돼 버렸다. 암흑 속에 갇혀버린 이들의 생명은 풍전등화와 같이 죽음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드디어 69일 만에 구조됐다.


매몰당시 그들은 33인이 아니라 신(神)과 함께 모두 34인이라며 하늘이 그들과 함께하고 있음을 믿었다. 이들의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전 세계가 협력했다. 해외의 온갖 기술진의 도움과 미국 나사에서 만든 음식, 미국기술자들의 플랜B 드릴이 판 구멍에 불사조란 피닉스2 캡슐이 투입된 후 한 사람씩 구조돼 모두 살았다.

생명은 위대하다. 33명의 생명이 구조된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가 환호했다. 이들이 구조되어 땅 속에서 나오던 날은 전 세계에서 10억 명이 지켜보며 한 사람씩 캡슐을 타고 올라올 때마다 자신의 생명이 지옥에서 살아나오듯 환성을 질렀다. 온 인류가 하나 되는 순간이었다. 생명의 귀중함과 가치는 이렇듯 모든 걸 초월한다.
1995년 6월29일, 서울의 삼풍백화점 A동이 주저앉아 버렸다. 지상5층에서 지하4층까지 완전 매몰됐다. 이 사고로 502명이 사망, 937명이 부상, 7명이 실종됐다. 백화점 붕괴 후 구조대는 무너져버린 건물 속에서 살아남아 있을 생명들을 찾기에 힘썼고 드디어 11일만에 최명석, 13일만에 유지환, 17일만에 박승현을 구조해 냈다.

11일만에 생명을 살린 최명석씨는 그후 대학 전공인 건축설비를 살려 현재 모건설회사 재개발건축기획팀에서 근무하며 사고당시를 교훈삼아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산단다. 돈을 벌어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을 위해 힘쓰겠다고 한다. 13일만에 구조된 유지환씨는 중소유통업체에 다니는 남편과 결혼해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다.

박승현양은 구조된 후 기자와의 회견에서 곧 죽을 것 같고 절망이 턱밑까지 차오를 때면 친구들과의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며 꿈을 꿨단다. 9일째부터는 기억이 안 났고 천둥이 치고 벼락이 쳤는데 불현듯 가족들의 얼굴이 떠올랐고 엄마와 아빠가 제일 보고 싶었다며 살아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버티어 결국 살아났다고 했다.

인공지능 알파고와 인간 이세돌의 바둑대결이 4대1로, 이세돌의 패배로 끝났다. 인류가 기계에게 졌다고 하나 그렇지 않다. 알파고는 인공지능을 가진 컴퓨터일 뿐이다. 알파고가 33인의 광부 중 하나였거나 삼풍 붕괴 때 매몰됐었다면 광부나 박승현처럼 살아나올 수 있었을까. 없다. 이유는, 알파고는 생명체가 아니기에 그렇다.

컴퓨터와 인간이 다른 것은, 인간은 생명이 있고 기계는 생명이 없다는 거다. 생명이 무엇인가. 생명은 피와 물이요 대우주를 품을 수 있는 소우주다. 또 생명은 불행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의지다. 죽음 같은 흑암 속에서 69일 만에 살아난 33명의 광부와 또 17일 만에 살아난 박승현양의 생명의 힘. 알파고는 죽어도 모를 거다.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