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거짓말 하는 만우절

2016-03-18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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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4월1일은 만우절이다. 일 년에 한번 가볍고 장난스런 거짓말은 해도 되는 날이다.
16세기말 프랑스의 샤를 9세가 4월 1일을 새해 첫날로 하던 역법에서 1월 1일을 새해 첫날로 하는 그레고리력으로 역법을 바꾸었다.

그러나 통신력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 역법이 바뀐 것을 모르는 시골 사람들은 여전히 4월 1일에 새해 축제를 열었다. 그러자 도시인들이 이들에게 새해맞이 가짜 선물을 보내면서 장난을 쳤고 4월 1일을 ‘바보의 날 ( April Fool’s Day)’이라 불렀다는 만우절의 유래가 전해진다.

과거, 뉴욕타임스, CNN, 영국 BBC 등 세계 주요언론사들은 만우절이 되면 재미있는 이벤트로 시청자와 독자들에게 재미를 주었다. 매일 전쟁 기사나 사건 사고 등 어둡고 힘든 세상을 보여주다가 일 년에 한번 잠시나마 밝은 세상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오래 전, BBC 방송은 나무에서 스파게티를 수확하는 장면을 방송하여 그날 시청자들의 스파게티 나무재배법 문의가 빗발쳤고 스웨덴의 방송 기술자는 흑백TV위에 나일론 스타킹을 씌우면 컬러 TV가 된다고 해 실제 사람들은 그리 해보았다. 뉴욕타임스는 패스트 푸드사 타코가 자유의 종을 구입하여 ‘티코 자유의 종’이라 불러야 한다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특히 구글사는 달에서 일할 직원 구인 광고, 구글 지도에서 보물찾기, 내 사진에 끼어든 유명인사 등 다양한 이벤트를 했는데 올해에는 이세돌과 대국을 벌인 인공지능을 다룬 만우절 이벤트를 할 것같다. ‘81%는 매일 선의의 거짓말을 한다, 10분동안 대화하며 평균 3번은 거짓말을 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거짓말에는 다양한 색깔이 있다.“당신 못생겼어”하고 돌직구를 날려 못생긴 여자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것이나 어느 영화에 나오는 ‘거짓말 못하는 나라’의 요양원 간판에 ‘오갈데 없는 늙은이를 위한 슬픈 곳’이라는 표현은 얼마나 끔찍한가. 여기에는 새하얀 거짓말이 필요하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남을 해치거나 위협하거나 죄가 되는 새까만 거짓말이다.

미국은 청교도 기반위에 세워진 나라라서인지 거짓말 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할리웃에서 극본을 쓰는 한 작가가 한 말이 마음에 와닿은 적이 있다. “미국 드라마의 주인공은 절대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사소한 말이라도 거짓을 말하는 주인공이란 미드에 없다. ”

한국의 막장 드라마 중에는 거짓말을 밥먹듯 하는 나쁜 남자, 나쁜 여자가 많이 등장한다. 못되면 못될수록 시청률이 오르다보니 부정적인 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가 트렌드처럼 되어버린 점이 없지 않다. 그만큼 도덕성이 무너졌다고 볼 수 있다.

미국 학교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정직이다. 잘못이나 실수는 용서할 수 있어도 거짓말은 용서되지 않는다. 미국에 살려면 사소한 일에도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수사단계에서 경찰에게 거짓말을 해도 죄가 된다. 미국 법정에서 위증죄는 엄청난 범죄로 강도 높은 벌을 받는다.

1972~1974년 미 역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사임한 워터게이트 사건이 있다. 리처드 닉슨을 자리에서 끌어낸 것은 민주당 선거운동 본부가 있는 워터게이트 도청 사실보다도 닉슨의 거짓 진술이 미 국민의 분노를 자아냈다.

요즘 우리 주위에도 거짓말이 난무하고 있다. 살인사건, 사기나 폭력 사건의 용의자중 누가 거짓말을 하는 지 가리는 게 쉽지 않다. 진실은 오로지 본인만이 안다.

15년간 인기리에 방영되다가 작년에 막내린 미국의 한 범죄 수사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은 거짓말을 해도 증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또, 도산 안창호는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하지말라. 꿈속에서라도 성실을 잊었다고 뼈저리게 뉘우쳐라. 죽더라도 거짓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이 서슬 퍼런 기개가 살아있는 말이 마음에 든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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