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신 낮추기!’

2016-03-14 (월) 연창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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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언제나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수행하는 사람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이것을 하심(下心)이라 한다. 어느 누가 나를 멸시하더라도 털끝만큼도 자신을 내세우지 말고 겸손 하라는 것이다.

불교의 수행은 자신을 낮추는 공부다. 하심은 수행의 기본덕목이자 성취정도를 재는 잣대다. 그래서 수행자에게 특단의 방법으로 겸손을 가르친다. 삼의일발(세 벌의 옷과 음식 담는 그릇 한 개)로 욕심을 줄이고 걸식해서 연명하라는 것이다. 수행자를 ‘걸사(乞士)’라고 하는 이유도 거만하지 말고 자기를 낮추라는 의미다.

자신은 낮추고, 마음을 내려놓은 것. 편안한 느낌을 주는 하심의 뜻이다. 불교의 수많은 메시지 중 사랑을 듬뿍 받는 이유다. 그래서 불자가 아닌 사람도 ‘하심’이란 말엔 고개를 깊이 끄덕이나 보다.


나의 마음을 낮추어 남을 공경하는 것. 그 뜻을 겸손이 가져 화합하는 삶을 이루는 것. 그 것이 바로 하심이다. 사전에서 “불교용어로서,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것”이라 설명하는 이유다.

우리주변에는 자신을 낮추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꼽는 한인인사들이 참 많다. 하지만 남을 업신여기지 않음을 실천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낮은 자세로 겸손하기 보다는 명예욕에 사로 잡혀 나서기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명예는 하심의 열매다. 명예는 무심으로 자신의 일에 전념할 때 얻을 수 있다. 결과를 얻을 때마다 아직 부족함을 자인하며 계속 노력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명예는 늘 하심과 함께 한다. 하심이야말로 진정한 명예인 셈이다.
명예욕은 정반대다. 명예를 애써 만들고자 하는 욕망일 뿐이다. 명예욕은 아집과 교만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다섯 가지 욕망이 있다. 물욕(재물), 색욕(성욕), 식욕, 수면욕, 명예욕이다. 이중 색욕, 식욕, 수면욕은 본능에 속한다. 물욕과 명예욕은 인간의지가 개입된 욕심이다. 그 중에서도 죽을 때까지도 끊어지지 않는 것이 명예욕이다. 죽고 나서까지도 지니고 싶은 게 명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나 ‘명예욕’이 문제다. 한인사회도 마찬가지다. 한인회를 비롯한 수많은 한인단체에 ‘명예욕’에 빠진 현, 전직회장, 이사장 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인사회에 봉사직책을 감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들은 반환불가의 공탁금을 걸고 머리가 터져라 선거에 임한다. 절대양보가 없다. 법정까지 간다. 감투가 아니고 명예욕이 없다면 그럴 수 있을까? 봉사한다고 나서서 그렇게 필사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여하튼 하심으로 바라보면 한인사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전직회장’들의 ‘명예욕’도 만만치 않다. 그들 중에는 현직보다 더 주목 받기를 원하기도 한다. 그런 전직회장도 있다. 때론 전직회장끼리 세과시도 한다. 행사에 참석하는 전직회장의 위세가 ‘예우’의 수준을 넘을 때도 있다. 현직 회장에게 ‘훈계’나 ‘지시’하는 모습도 종종 목격되고 있다. 물론, 현직회장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적극 지원해 주는 진정한 전직회장들도 많이 있다. 전직회장들은 당연히 존경과 예우를 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현직회장보다 더 위세를 부리거나 지나치게 참견하는 것은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다.

뉴욕한인회 ‘한 지붕 두 회장’ 사태가 일단락됐다. 법원이 지난 10일 김민선 회장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젠 뉴욕한인회 정상화를 위한 원칙에 맞는 철두철미한 인수인계 작업만 남았다. 이 와중에 역대회장단협의회 의장과 한 전직회장이 문제시 민, 형사상 책임을 언급하며 회계감사 후폭풍을 예고했다. 한인회관 회계문제를 철저히 밝히려는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인수위원들에 대한 ‘월권행위’로 비쳐질까 우려된다.

명예욕은 스스로 굴레가 되어 과욕과 좌절을 자초하기 일쑤다. 이런 명예욕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하심뿐임을 잊지 말아야할 때이다.

<연창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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