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간의 존엄

2016-03-11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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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바둑의 최강자 이세돌 9단이 구글이 만든 알파고(AlphaGo)와의 대국에서 2연패를 당했다. 자칫 단 한번의 우승도 없이 완패를 당하지 않을까 할 정도로 사람들은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알파고에게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다.

구글의 인공지능 연구기관 ‘딥 마인드’가 개발한 알파고는 기보 3,000만건, 한달에 100만번의 대국 소화 등 엄청난 학습량으로 준비를 단단히 해왔다고 한다. 이미 1997년 IBM의 인공지능 컴퓨터 딥 블루는 세계 최고의 체스 선수와 대결하여 이겼고 2011년 미 인기퀴즈쇼 ‘제퍼디’에서 IBM 수퍼 컴퓨터 왓슨은 24회 연승을 한 인간을 이겨버렸다.

바둑은 지난 수천년간 동양의 지혜를 응축한 인문학으로 ‘인생’ 이라 했고 ‘하나의 도(道)'라 했다. 상대방의 기운이나 기세를 읽어내고 직관으로 제압하는, 감각과 창의성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알파고는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바둑 선수 택이(박보검 분)처럼 잠을 못자서 피로하지 않으니 수면제를 먹지 않아도 되고 긴장감으로 음식을 못 먹지도 않는다. 상대의 수에 당황하지도 오만하지도 않는다. 걱정이나 불안감도 없다. 오로지 방대한 데이터에 기준해 차갑게 계산하고 냉정하게 판단할 뿐이다.
미 스탠포드대를 비롯 세계 여러 연구기관에서 사람과 자연스런 대화가 가능한 인공지능을 지닌 로봇을 제작 중이다. 이 사람처럼 행동하는 로봇을 소재로 한 한국 영화 ‘ 로봇, 소리’가 1월에 개봉되어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다.

10년 전 실종된 딸을 찾아 전국을 헤매는 아버지 해관(이성민 역)이 실수로 서해바다에 떨어진 미항공우주국의 로봇을 발견, 그 로봇이 목소리를 통해 대상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음을 알게된다. 로봇에게 ‘소리’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려고 분홍빛 추리닝을 입혀서 딸의 흔적을 찾아 한걸음씩 다가가는데 영화가 끝날 즈음. 이 로봇이 사람처럼 생각된다.

이미 사람의 능력을 대신하는 인공지능은 자동온도 조절 보일러, 스마트 폰, 드론 등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왔고 여러 분야에서 인간의 일자리를 밀어내고 있는 중이다. 공장조립 라인 같은 블루칼라 인원이 대폭 줄었고 대형 마켓에 가면 무인 계산대가 늘고 있다.

맨하탄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센터는 ‘왓슨 헬스’를 도입하여 전문의와 함께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정확한 치료법을 찾고있다. 이 특정 전문직조차 자리가 얼마나 보전될 지 미지수다. 인공지능에게 일자리를 넘겨주고 새로 창출된 일자리는 컴퓨터 공학, 수학 분야 등 소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요즘 대학원을 나온 전문직들이 컴퓨터 분야 대학원에 다시 들어가는 경우도 날로 늘고 있다.

그러면 일자리를 빼앗긴 인간은 무엇을 하나? 모두가 명상을 하고 시를 쓴다? 그림을 그린다?. 그것도 인공지능이 세계 문학, 철학 등의 인문서적들을 섭렵 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니 조만간 인공지능이 쓴 베스트셀러가 나올 것 같다.

아직은 듣고 냄새를 느끼고 울고 웃는 오감의 영역을 침해당하지 않았지만 그것도 개발이 완성되면 우리가 익히 봐 온 SF영화처럼 인간과 기계의 전쟁이 날 것이다. 이 분야 전문가들은 인공지능의 기술이 발전을 거듭하여 2045년에는 인간이 통제 불가능한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측한다.

인공지능 개발업체들은 의료보건이나 로봇 등이 장차 인류를 위해 더 크게 쓰일 것이라고 하는데 활용과 통제의 가이드라인을 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든가, ‘생각하는 동물이다’ 하는 말들이 사어(死語)가 되기 전에 말이다.
이번 인간과 기계의 대국을 보며 새삼 인간의 존엄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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