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적 가치 포기하고 세상과 타협한 기독교
▶ 돈과 자기 이익 쫒는 사람에 거부감 안 가져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선거 캠페인 도중 성경을 들고 자신의 신앙을 소개하고 있다.
■ 다트머스대 랜들 벌머 교수 칼럼
사랑과 공의는 하나님의 정체성이다. 교회나 기독교인에게는 율법을 넘어서는 사랑, 불의와 손잡지 않는 공의가 판단의 기준이 돼야 한다. 하지만 금력과 권력 앞에서 신앙은 쉽게 초라한 모습으로 추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와 같은 부조리는 세월을 따라 켜켜이 쌓이면서 신앙을 크게 왜곡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갖가지 이유를 내세워 합리화에 나선다.
LA타임스는 지난 3일 복음주의 기독교인들과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온 도널드 트럼프와 상관관계를 드러내는 칼럼을 실었다. 아이비리그 대학 중의 하나인 다트머스대학교 종교학과 랜들 벌머 교수가 ‘복음주의자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게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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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후보는 현재 대선후보 중에서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고 있다. 가장 ‘세속적인’ 지역으로 꼽히는 네바다주부터 가장 ‘기독교적’인 지역으로 알려진 소위 ‘바이블 벨트’ 남부 지역에서도 복음주의자들의 지지로 연달아 승리를 거두는데 성공했다.
정계는 물론 학계와 언론은 이같은 기현상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성경적 원칙을 고수한다면서 보수적 신앙과 정치관을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이 이제껏 성경적 삶과는 거리가 멀게 살아온 것으로 알려진 트럼프 후보에 표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주의 기독교인이며 저명한 종교학자인 벌머 교수는 LA타임스 칼럼을 통해 세간의 이같은 의문과 혼돈에 대해 명쾌하게 배경을 설명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복음주의 기독교인과 트럼프 후보 사이에 큰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사실상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복음주의 기독교조차 물질 만능주의와 세속화 물결에 휩쓸려버렸고, 트럼프 후보에 대한 지지는 바로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기독교인들의 이런 속마음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다.
수십 년 전만 해도 교회는 세속적인 삶을 거부했지만 부요와 이해타산 앞에서 성경적 원리를 포기하고, 지속적으로 세상적 기준과 타협했다고 벌머 교수는 지적했다. 실례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는 것보다 어렵다’는 성경 구절은 과거 목사들이 설교에서 흔하게 인용하는 내용이었지만 이제는 거의 들을 수도 없게 됐다는 것이다.
지난 1970년대에 흑백 인종의 학교 분리와 교회에 대한 세금 면제를 강력히 주장하던 복음주의자들이 정치적 견해를 공감하는 공화당 극우파 진영으로 넘어갔다고 벌머 교수는 밝혔다. 그 결과 할리웃 스타 출신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지지한데 이어 이제는 부동산 스타에 표를 몰아주게 됐다는 설명이다.
벌머 교수는 레이건 전 대통령이 캘리포니아 주지사 시절 낙태 허용 법안을 가장 많이 승인한 전력이 있으며 이혼 경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혼과 임신중절 수술을 죄라고 주장하는 복음주의자들이 열렬히 지지했다고 소개했다. 두 번 이혼하고 세 번 결혼한 사생활을 비롯해 여러 대의 전용기를 타고 다니며 선거운동을 벌이는 재벌 트럼프 후보에게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이야기다.
풀러신학대학원 김세윤 교수는 “돈과 자기 이익 앞에서는 평소에 부르짖던 신앙도 소용이 없다는 현실을 보여준다”면서 “기독교 가치관이 잘못 정립되는 바람에 상반된 주장을 펼치는 트럼프 후보를 복음주의자들이 지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결국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구현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모두가 살만한 공동체를 추구하는 게 기독교적 가치관”이라며 “한국 기독교가 ‘개독교’라는 욕을 먹고 있는 이유도 돈과 권력를 섬기는 모습으로 교회가 비쳐지고 있는 탓”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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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원 종교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