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갈바와 트럼프

2016-03-09 (수) 여주영(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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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년 6월 왕위에 오른 제6대 로마황제 세르비우스 갈바는 즉위 6개월만에 살해되었다. 다섯 황제를 보필했던 그가 이처럼 빠른 시일안에 살해되자 역사가는 말했다. “갈바가 만약 왕이 되지 않았다면 왕이 될 자질을 모두 갖춘 아까운 정치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가 왕보다 신하로 있을 때의 능력이 더 인정받고 임무가 적합했다는 뜻이 포함돼 있는 말이다.

지금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미국의 제46대 대통령 선거전에서 공격적인 막말로 대선전을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는 부동산 재벌,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의 행보를 보면 왠지 황제 갈바가 떠오른다.

트럼프가 대선전 이래 지금까지 토해낸 말과 공약에서 그에게는 대통령 자리보다는 오히려 그가 쌓아온 부동산 재벌, 사업가로서가 더 인정받는 인사로 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가 연일 내뱉는 말과 공약들은 모두 미국의 발전상과 안정적인 미래와 역행하고 있는 점에서 아무리 보아도 그가 미국을 발전적으로 이끌어갈 지도자로는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


그의 거칠고 공격적인 말과 정책에 열광하는 지지자는 거의 절반이 모두 먹고 살기 힘들어져 현실에 불만을 품은 소수의 저소득, 저학력의 보수백인에 불과하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 우리 자리를 되찾자고 외치는 이들만의 지지로 그가 미국이 지금까지 이루어낸 번영과 발전을 계속 구가해나갈 수 있을까. 많은 유권자들, 심지어는 같은 당 내부에서까지 트럼프의 득세를 크게 우려하며 그의 질주를 막기 위해 제동을 걸고 있다.
“멕시칸들은 다 성폭력범이다” “무슬림들은 아예 미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미국에 무역 불공정으로 떼돈을 벌고 있는 나라들을 손보아야 한다” “한국은 안보에 대해서 무임승차 하고 있으니 군사비를 더 내야 한다”

이런 막말로 트럼프가 지난 ‘수퍼 화요일’ 경선에서 압승하자 캐나다 이주를 희망하는 문의가 평소보다 10배나 늘었다고 한다. 샐러드 보울의 다양성과 누구에게나 균등한 기회의 나라 미국의 가치와는 정면 배치되는 이유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중국의 탕왕과 무왕은 시대적으로는 서로 달라도 처음 물려받은 백리 밖에 안 되는 땅을 부흥시켜 천하를 통일하는 대업을 이루었다. 그것은 나라를 훔친 제후들까지 신하로 삼고 모든 백성들을 심찰하며 의를 가지고 나라를 다스렸기 때문이다.
두 왕은 모두 용서와 화해로 적들에게까지 식량과 살집, 땅을 주고 살게 해주었다. 이것이 소문이 나 먼 나라의 절름발이, 소경, 거지까지도 이들을 찾아오더라는 것이다. 그동안 미국의 대외정책도 바로 이런 포용과 배려를 근간으로 한 것이었다. 이것이 미국을 선호하게 만들면서 수많은 두뇌들과 노동자들이 찾아와 오늘의 부강한 미국을 만든 것이다.

이제 트럼프가 오는 15일 치러질 ‘미니 수퍼 화요일’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 확실한 것은 그의 정책과 공약으로는 미국의 지속적인 번영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려면 물은 백성이요, 그릇은 왕이라고 한 것같이 지도자가 물과 그릇이 잘 융합되도록 해야만 나라가 융성 발전 할 수 있다. 이를 실천하는 지도자가 지금 미국에 필요하다.

미국역사상 3선대통령으로 위대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미국을 이렇게 정의했다. “미국은 유색인종을 아우르고 가난한 사람을 풍요롭게 할 때 전진 할 수 있다.” 과연 누가 이런 능력의 지도자일까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juyoung@koreatimes.com

<여주영(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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