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냐의 아름다움

2016-03-08 (화) 김창만(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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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도스토예프스끼의 작품 ‘백치’에 여러 번 나오는 말이다. 도스토예프스끼는 “백치‘에 등장하는 주인공 미쉬낀의 입을 빌려 여주인공 나스따시야에게 이 말을 했다.

‘백치’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나스따시야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유화를 그리는 화가라면 누구나 탐낼만한 미인이었다. 하지만 나스따시야의 아름다움 때문에 불행한 운명의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다. ‘죄와 벌’에 등장하는 거리의 여자 ’소냐‘는 도스토예프스끼가 혼신을 기울여 찾아 낸 아름다운 여성이다.

소냐는 가난한 가정을 돌보기 위해 거리로 나선 가련한 여자였다. 이런 하찮은 여자가 전당포 노파를 죽인 후 반항의 삶을 살고 있는 오만한 대학생 라스꼴리니꼬프를 구원으로 이끈다. 필설로 설명하기 어려운 역설의 극치다.


거리의 여자 소냐는 성(聖)과 속(俗)의 경계에서 고단하게 살면서 시대의 반항아, 라스꼴리니꼬프를 구원한 아름다운 여성이다. 천한 세속의 옷깃 안에 사랑을 깊숙이 숨기고, 오만한 살인자에게 겸허하게 침투하는 소냐의 치열한 사랑은 예수를 닮았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노래했다. “모든 경계에는 아름다운 꽃이 핀다.”

지난 2월 초 이스라엘 성지순례 중 여리고를 찾았다. 우기를 막 벗어난 여리고의 하늘은 고려청자의 비색처럼 아름답고 찬란했고, 해지는 저녁 무렵의 여리고는 낮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떨리도록 아름다웠다. 황금처럼 빛나는 요단강의 역사와 라합의 아름다운 신앙의 전설을 품은 여리고는 경계에 줄지어 선 종려나무처럼 고고하고 성스러웠다.

흩어진 돌무더기 성벽을 넘나들며 술래잡기를 하는 아이들이 붉은 흙바람을 일으키며 뛰어 놀았다. 나는 아이들을 불러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때 강 건너 먼데서 유리알 같은 별들이 돋아나오고, 달동네 언덕의 집 창문마다 아이들의 따뜻한 눈동자 같은 하얀 빛들이 흘러나왔다. 눈에 물기가 서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붉은 줄을 든 라합의 환상이 망막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아이들의 손을 꼬옥 붙잡으며 속으로 말했다. “너희는 아느냐, 라합의 붉은 줄의 비밀을-”

라합처럼 소냐에게도 신앙은 ‘붉은 줄의 비밀’이었다. 그래서 소냐와 라스꼴리니꼬프 두 사람이 마음의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섰을 때, 라스꼴리니꼬프는 소냐가 읽어 준 요한복음 구절을 듣고 구원받았다. 소냐의 사랑은 요단강처럼 맑고 심원해서 아름다웠다.

당신은 리더인가. 라합과 소냐처럼 사랑의 아름다움을 내면에 소중히 숨겨 보존하라. 그것으로 삶의 경계에 서서 내일을 팔아 오늘을 살아보려고 서성거리는 라스꼴리니꼬프 같은 근시인을 구원하라.

<김창만(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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