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회개의 계절

2016-03-07 (월) 최효섭 (아동문학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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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기도교의 사순절(四旬節)이다. 부활절을 앞둔 40일간의 절기이며 흔히 수난절(受難節)이라고도 불린다. 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앞둔 고난의 40일이기 때문이다. 사순절을 ‘참회의 계절’이라고도 부르며 회개와 반성으로 조용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계절이다.

예루살렘에 ‘통곡의 벽’이 있다.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이 벽을 마주 보며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 조금씩 자리를 이동한다. 옛 성전의 지성소가 있었던 쪽으로 이동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유대교 연구가인 존 키드 씨의 조사에 의하면 지성소가 가까워질수록 순례자들의 눈에서 소리 없는 눈물이 흘러내린다고 한다.

옛날 유대인의 성전에는 ‘지성소’라 불리는 공간이 있고 거기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었다. 지성소가 가까워지면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하나님을 가까이 느낄 때 사람은 자기의 죄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울 때는 좀 우는 것이 좋다. 예수는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웃을 것임이요”(눅6:21)라고 하셨다. 눈물 고인 눈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그 눈물이 자신을 뉘우치는 눈물이라면 무척이나 고귀한 눈물이다. 모지고 성난 눈은 주변을 긴장시킨다. 친절한 눈동자는 주변을 안심시킨다. 아름다운 눈은 말없는 자를 웅변가로 만든다. 슬픈 눈은 온 집안을 우울하게 한다. 반짝이는 눈은 상대에게 용기를 준다. 졸린 눈은 입맛을 잃게 한다. 멍한 눈은 남을 실망시킨다. 눈의 표정은 수 백 가지로 변하는데 그 변화마다 주변에 던지는 영향이 다르다. 그 중에서도 눈물고인 눈, 용서를 구하는 눈은 사람과 하나님까지도 감동시킨다.

내 경험으로 생각할 때 가장 하기 힘든 일 세 가지가 있는데 미운 사람에게 정을 주는 일과 싫어하는 사람을 받아들이는 일과 별 것 아닌 것 가지고 회개하는 일이다. 그 중 세 번째가 제일 어렵다. 드러난 것을 회개하는 것은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회개라고 할 수도 없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을 회개하는 것이 진짜 회개이다.

회개는 자발적인 성격을 가진다. 누가 추궁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숨기고 있으면 더 무사하고 체면도 서고 존경도 받을 수 있을 때 자진해서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회개이다. 이런 회개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인격자이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눈을 가릴 수는 없는데 회개를 유보하는 것은 어리석다. 회개란 벌거숭이가 되는 것이다. 가장 향기로운 제물이 참회하는 마음이다.

요한 기자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의 모습을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요19:17)란 표현을 사용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라고 하면 예수의 십자가만을 생각하고 ‘나의 십자가’를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나의 십자가는 무엇인가?

첫째, ‘나의 십자가’란 자발적으로 진 십자가, 책임감을 가지고, 더 나아가 그것을 나의 사명으로 인식하며 지는 십자가가 ‘나의 십자가’이다. 둘째 ‘나의 십자가’란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의미를 확실히 인식한 예수의 행동을 가리켰다.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묻힌다는 그리스도의 신념이 드러난 행동이 십자가이다. 셋째 ‘나의 십자가’란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주는 길임을 인식한 예수의 행동이었다.

뉴욕 항구에 ‘자유의 여신상’이 있다. 봉화 속에 많은 전구가 들어있고 반사경 300장이 들어있다. 날마다 이 유리와 반사경을 닦는 찰리 델레오 씨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힘들 때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였습니다. 예수의 빛을 밝히려고 유리를 닦는 것으로 생각하면 날마다 좁은 계단을 올라 다니며 300장의 유리와 반사경을 닦는 일도 노래를 부르며 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밝은 빛을 주는 것이 얼마나 보람찬 일입니까!”

<최효섭 (아동문학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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