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국가안보와 사생활 침해

2016-02-27 (토) 박미경(편집국 부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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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미국은 대선을 향해, 한국은 총선을 향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날선 칼날을 세우며 가파른 질주를 하고 있다.

장기화된 글로벌 경기 불황 속에 너도나도 경제 활성화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며 ‘경제’가 키워드가 되는가 싶더니 새해들어 북한의 예기치 못한 도발로 인해 북핵문제가 한미 양국의 선거 쟁점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그러더니 최근 들어서는 국가안보와 사생활 보호가 공통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주 FBI가 샌버나디노 총기난사 테러범의 아이폰 잠금장치 해제를 애플사에 요청하였는데, 팀 쿡 애플 CEO는 고객의 개인정보를 위협할 ‘위험한 선례’가 될 것이라며 거절했다. 그러자 공화당의 대선주자인 트럼프는 자신의 트위터에 “테러범 정보를 넘길 때까지 애플 제품을 보이콧 하겠다”고 하였다.


여론도 찬반 양론의 논쟁이 뜨겁다. 주요 언론들을 통해서 나타난 결과를 살펴보면 안보와 테러라는 프레임 속에 미국인의 51%가 잠금장치 해제를 지지하고 있다. 9.11과 크고 작은 총기 사건을 가까이서 보고 겪은 미국인들의 테러에 대한 경계의식이 얼마만한지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인권을 중시하는 기업의 편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총선을 목전에 둔 한국은 지금 테러방지법으로 정치권이 시끄럽다. IS의 프랑스 테러와 북 핵미사일 도발로 국가 안보에 대한 인식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국회의장의 기습적인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이 있었다. 이에 야권에서는 국회 본회의 표결을 막기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필리버스터’는 다수당의 독주를 막는 소수당의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로 대한민국은 유신체제 하인 1973년 45분 시간제한 조항이 만들어져 유명무실해졌으나 2012년 ‘국회선진화법’을 만들때 무제한 토론으로 부활하였다.

이들 야당의원들이 밤도 잊은채 무제한 토론을 이어가는 까닭은 이 법안이 통과되면 무소불위 권력의 국정원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의원들은 국회에서 중정과 안기부의 횡포와 고문으로 스러져간 열사들의 일화를 열거하며 당시 시대적 배경과 수많은 항거 그리고 탄압으로 점철된 과거의 민낯을 낱낱이 드러냈다. 그런데 이 법안이 통과되면 정보의 수집•작성•배포 기능이 국정원 한 곳에 집중되는 것이다.

이통사 감청설비 설치가 의무화되어 영장없이도 언제든 내 통화를 엿듣거나 메시지를 엿보거나 금융정보를 확인할 수가 있다. 항시 누군가가 나를 들여다보고 누군가와 나의 모든 것을 공유하는 것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해외 거주자도 의심스런 인물로 찍히면 예외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미국에 사는 한인이 인터넷에 정부에 관한 글을 올리거나 댓글을 달거나 집회를 해도 모두 사찰대상이고 감청대상이다. 한국 테러방지법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정보가 힘인 빅데이터 시대에 개인정보 수집은 불가피하다. 또한 테러를 일삼는 단체나 개인은 벌을 받아야만 한다. 하지만 국가안보를 앞세워 무고한 개인의 사생활 침해를 합법적으로 공공연히 자행하는 것는 문제가 있다.

<박미경(편집국 부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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