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추피추에서 쿠스코까지

2016-02-27 (토) 정정숙 (전 공립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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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는 늘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있게 마련이고 변수가 많았던 여행일수록 더 기억에 남는다. 전날 춤을 추고 밤늦게 숙소로 급히 달려가다 넘어져 다친 다리를 절며 마추피추의 절경에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관광을 끝내고 버스를 탄 후 또 낮 기차를 탔다. 1시간 반이면 쿠스코에 돌아가 저녁 시간에는 드디어 ATM에서 돈을 찾아 마음에 드는 물건들을 사러 다니자고 계획을 세웠었다. 이 기차가 바로 호텔 주인이 좋다고 자랑하던 기차, 가장 빠르고 비싼 잉카레일, 1시간 반 가는 거리에 일인당 90달러나 되니 엄청나게 비싼 기차였다.

기차는 두 칸 밖에 안 되었지만 깨끗했다. 우리 자리 주변에는 전부 일행으로 보이는 아르헨티나 부부 팀들이 탔다. 내 앞의 아르헨티나 여인이 재미있었다. 내 또래 같았다. 애교스러웠다. 남편에게 기대기도 하고 남편에게 부탁하기도 하며 남편 역시 처를 끔찍이도 아끼고 사랑스러워 하는 듯싶어 말이 통하지 않아도 몸의 표현만을 관찰하고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재미있었다. 일행 중에 영어가 조금이라도 되는 사람은 여자 한 명 뿐이어서 그를 통해 그나마 알고 싶고 궁금한 것들을 서로 물었다.
그런데 기차가 섰다. 무려 6시간. 이유는 기차에 기름을 넣지 않고 출발을 하였단다. 이런 일이 50년만에 처음 있은 일이라는데 어쩌자고 우리가 이런 일을? 기차가 멈춰 있는 동안 놀라운 것은 짜증을 내거나 불평을 하는 사람이 우리남편 밖에는 없었다는 것. 마냥 앉아 있는 것이 점점 지루해지려 할 때 내가 노래를 하자고 제안했다.

"깐타스, 폴파볼" 했더니 모두가 재미있어 하며 노래를 생각해 내는데 스페니쉬를 못 알아듣는 내가 들어도 그건 동요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러더니 노래가 달리는지 성가로 옮겨갔다. 가사를 잘 모르는 모양이어서 서로 묻고 가르쳐주고 있었다. 나는 우리 뒤쪽에서 하는 영어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역시 동요였다. 교대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서 마치 영어노래와 스패니쉬 노래의 경합을 벌이는 것 같았다. 스페니쉬 노래는 단 한곡도 모르는 나는 자리를 옮겨 영어노래 팀으로 갔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노래를 브르라 청해놓고 자리를 옮기려니 마치 무슨 배신을 하는 것처럼 뒤통수가 당겼지만 어쩌랴. 영어노래를 그래도 몇 곡 아는 것이 있으니...


다른 노래 인솔자가 내게 어떻게 노래 가사들을 그렇게 아느냐고 물었다. 아무튼 내 말 한 마디로 1시간 이상 기차에서 노래를 부르며 가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남편도 가는 곳보다 소요(?)를 일으키는 내 모습을 무척 신기해한다. 온 기차간을 노래를 물들이는 힘에. 이런 것도 리더십인가?

기차의 앞부분을 바꾸어 붙이고 올란타이탐보까지 간 시간은 7시간 반이나 걸렸다. 도착시간은 밤 10시 30분경. 식당이 전부 문을 닫았으니 그냥 쿠스코 숙소로 달리는 수밖에. 다음날 아침 8시 비행기를 타려면 잠도 모자랄 터…

쿠스코에 도착하니 자정이 넘었다. 우리를 늦은 시각에 불평 없이 데려다 준 운전기사 리차드가 고맙다. 제일 먼저 ATM 기계에서 빳빳한 돈 200달러를 찾아 리차드에 먼저 20달러를 건네주니 리차드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고맙다는 인사를 무려 세 번씩이나 했다. 그는 이미 호텔주인으로부터 대가를 받았기에 손님으로부터 팁을 다시 받게 되리라는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하루 종일 차를 대여하여 받는 돈이 20달러라고 한다. 과묵한 리차드가 몹시 좋아하니 나 역시 덩달아 행복했다. 곳곳에서 선한 사람을 만난 것, 그것이 내가 페루를 다시 가고 싶은 큰 이유이기도 하다.

<정정숙 (전 공립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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