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일터가 곧 사역지’ 평신도 훈련에 역점

2016-02-04 (목) 유정원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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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로-헤브론교회‘무조건 통합’5년 노진준 목사 원칙 목회 속 지속 성장

▶ “믿는다는 건 컴퓨터 OS 교체처럼 가치관·세계관 통째로 바꾸는 것”

‘일터가 곧 사역지’ 평신도 훈련에 역점

노진준 목사는 하나님이 주인이 되는 교회가 여전히 희망이라고 강조했다.

‘일터가 곧 사역지’ 평신도 훈련에 역점

교육주간을 맞아 어린이들이 십자가 아래에서 찬양하며 기도하고 있다.

‘일터가 곧 사역지’ 평신도 훈련에 역점

단기선교를 떠나는 교인들이 성도와 함께 기도하며 인내를 다짐하고 있다.


원칙을 지킬 수 없다면 융통성도 가치를 잃는다. 기준을 유지할 때 본질이 빛난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좇겠다고 나선 마당에는 더욱 그렇다. 기독교인과 교회는 복음을 실천하면서 비로소 생명과 힘을 얻는다. 기독교는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를 벗어나 존립할 수 없다.


한길교회는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에 자리 잡고 있다. 세계로교회와 헤브론교회가 합치면서 새 이름을 걸었다. 이제 한길교회가 탄생한 지 5년이 지났고 출석교인은 800명으로 크게 늘었다. 전체 성도 가운데 3분의 2가 한길교회가 출범한 이후에 새롭게 찾아온 사람들이다. 일단 이민교회에서 보기 드문 사례다.

한길교회의 조용한 성장 행진 뒤에는 원칙의 힘이 버티고 있다. 헤브론교회와 세계로교회가 하나의 교회로 합칠 때 합의한 조건이 딱 하나 있었다. 바로 ‘아무런 조건 없이 합친다’는 것이다. 세간에 횡행하는 소위 ‘딜’이나 ‘거래’는 애당초 들이댈 틈도 없었다. 교회가 가야 할 길은 세상과 다르고, 원칙은 고수하라고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회사나 단체나 모든 조직은 생산성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다 보니 갑을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고 갈등과 고통이 따르죠. 하지만 교회는 생산성을 따지는 곳이 아닙니다. 열심히 믿고 싶은 의지는 있어도 능력은 못 따라갈 수 있습니다. 교회에는 생산성을 넘는 또 다른 게 있어야 합니다.”

한길교회 노진준 담임목사는 볼티모어에서 갈보리장로교회를 개척하고 17년간 섬겼다. 교회가 중대형 규모로 컸을 때 위원회를 구성해 미래 사역을 연구하고 기획했다. 그 결과 나온 핵심내용이 ‘장년 성도가 500명이 넘으면 교회를 분립하되 담임목사가 나간다’는 것이었다. 얼마 뒤 노 목사는 스스로 담임목사를 사임하고 LA로 왔다. 자칫 목사가 ‘힘’을 갖게 될까 경계해서다.

“교회의 주인은 물론 목사가 아닙니다. 장로도 교인도 아닙니다. 아무도 힘을 행사해서는 안 됩니다. 누구의 교회인가를 잊지 말아야겠죠. 당회를 시작할 때마다 이 사실을 매번 선포합니다. 목사, 장로, 교인들 모두 기억하자는 것이죠. 하나님의 교회에서 사람이 주인 노릇하려들면 근본부터 어긋나게 되거든요.”

한길교회는 요즘 소그룹 인도자 훈련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소그룹을 통해 평신도 사역을 활성화하려는 것이 핵심 목표다. 흔히 말하는 순장 훈련이나 제자훈련과는 다르게 진행된다. 몇몇 성도를 리더로 세우는 게 아니라 평신도가 목소리를 내도록 이끄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평신도라는 말 자체에 거부감이 있지만, 교회에서 평범한 교인들이 신앙적 고백을 사실대로 털어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교회는 제자의 길을 강조하고 성도에게 제자답게 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평신도 역시 가령 ‘자바시장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십니까’라고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목회가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매일 삶의 현장에서 겪는 평신도의 고통은 더 크면 컸지 적지 않습니다. 성도가 세상 속에서 얼마나 힘들게 살고 고난과 부딪치는가를 진솔하게 논의하는 신앙훈련이 필요하다고 봐요.”

노 목사는 ‘교회와 일부 목회자가 독점하던 성경을 평신도에게 돌려준 것’이 종교개혁이었다면, 앞으로 제2의 종교개혁은 ‘사역을 평신도에게 넘겨주는 것’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목사가 하는 일을 교인에게 나눠주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목사가 할 수 없는 일을 성도가 하도록 돕자는 거지요. 사실 교회의 사역 중에는 목사가 할 수 없는 게 많습니다. 현실 세계에서 성도만이 절감하고 알고 있으며, 또 교인들이 직접 해야만 할 일을 찾아내고 훈련해야 합니다.”


노 목사는 복음과 사망을 떼어놓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미 죽은 상태에 처한 인간에게 생명을 회복시켜 주는 게 복음이라는 이야기다. ‘안 믿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죽은 생명이 복음으로 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와 평신도의 일터야말로 복음이 살아 숨 쉬는 하나님의 나라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하나님 나라의 반대는 지옥이 아니라 바로 ‘자아’라고 지적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져야 하는데, 본인의 생각이 펄펄 살아 있으면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는 말이다.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컴퓨터의 작동 시스템인 OS를 통째로 바꾸는 거지요. 그저 소프트 프로그램이나 어플리케이션을 하나 다운받는 게 아닙니다. 소프트웨어는 필요할 때 클릭하거나 아예 안 써도 되지만 OS는 다르죠. 한 번 새로 깔면 컴퓨터를 켤 때마다 피할 수가 없어요. 판 자체가 바뀌었으니 그리스도인은 가치관과 세계관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교회도, 인생도 하나님이 주인이라고 끊임없이 말한다. 그러나 정작 사람이 힘을 부리고 결정권을 행사한다. 그리고는 현실적인 방도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복음은 뭐 하러 전하고, 또 누구인들 수긍하겠는가. 나름 원칙을 지키려 애쓰는 목회에서 소망의 빛을 발견한다.

<유정원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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