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바이 바이, 바이든

2015-10-22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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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은 1942년 아일랜드계 어머니와 영국, 프랑스, 아일랜드피가 섞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한 때 잘 나갔던 아버지는 사업이 기울자 조가 태어난 펜실베니아 스크랜턴에서 델라웨어 클레이먼트로 이주해 중고차 세일즈맨을 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조는 학교에서 공부는 별로 잘 하지 못했다. 델라웨어 대학에서 역사와 정치학을 전공한 그는688명 중 508번째로 졸업했지만 자신은 만만했던것 같다. 봄 방학 때 바하마로 놀러갔다 나중에 부인이 된 뉴욕 시라큐즈 대학에 다니고 있던 부유한집 출신 여성 닐라 헌터를 만나 가까워지는데 그는이 때 벌써 자신은 서른살 이전에 연방 상원의원이 되고 나중에는 대통령까지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다.

그는 시라큐즈 법대에 진학한 후에도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법대를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곳”이라고 말하곤 했던 그는 평소에는 놀다 당일치기로 간신히 시험을 통과했으며 85명 중 76번째로졸업했다. 변호사 시험에는 합격했지만 변호사 일보다는 정치에 관심을 쏟다 1969년 뉴캐슬 카운티 의원에 당선되며 이를 발판으로 3년뒤에는 학창 시절 자신이 공언한대로 서른 이전에 연방 상원의원선거에서 승리한다.


그러나 앞길이 창창할 것 같던젊은 정치인에게 비극이 찾아온다.

1972년 상원 선거에서 이긴 지 한달 후인 12월 18일 아내가 몰던 차가 교통사고를 당해 아내와 어린딸이 숨지고 두 아들이 중상을 입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비극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올해 5월 델라웨어 검찰총장을 하며 유망주로 떠오르던 아들 보가 뇌암으로 숨진것이다. 주위 사람들에 따르면 조는 40년 전 아내와 딸을 잃었을 때 못지않게 아들의 죽음에 고통스러워했다고 한다.

대선 출마 여부를 몇 달 째 고민하던 조 바이든이 21일 결국 이를 포기하기로 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때가 너무 늦었고아직도 아들 사망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바이든은 1988년 대선에 도전했다 표절 스캔들에 휘말려 포기했고 2008년에도 도전했지만 아이오와에서 1%의 득표율을 보이며 5위를 하자 포기했다.

사실 그의 출마는 이미 시기를놓쳤다. 그에게 유일한 찬스가 있었다면 한 달 전 버니 샌더스가 뉴햄프셔와 아이오와에서 힐러리를 따라잡았을 때였다. 그 때라면 혹시판을 흔들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지난주 민주당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샌더스가 힐러리의 가장 큰 약점인 이메일 스캔들에 면죄부를 줌으로써 사실상 힐러리를 민주당 대선 후보로 만들어준 지금 바이든이설 자리는 없다.

40년이 넘는 공직 생활 중 뚜렷이 남긴 업적은 없지만 두 차례에 걸친 비극을 딛고 일어선 그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했다. 이번 출마 포기로 40여년전전 아내에게 했던 대통령 취임 약속은 지킬 수 없게 됐지만 되지도않을 일에 쓸데없이 정력을 낭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의 출마 포기는 올바른 결정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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