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나의 비자금

2015-10-19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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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레지나 / 수필가

정치인이나 경제인에겐 비자금이 치명적인 단어가되고 부부간에도 상대방의 비자금에 대한 의혹이 가정의 신뢰를 무너뜨리기도 하는데 그런 비자금이 나에게도 있다. 나의 비자금은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장만할때 생겼다. 집 계약 바로 직전에 극적으로 시세보다 2만달러를 싸게 살 수가 있어서 그게 나의 비자금의 터전이 된 것이다. 그러니 나의 비자금은 현금으로 장롱 속에 숨겨 있지도 않고, 은행통장에 잠겨있지도 않으며, 그저 내 마음속에만 투명하게 담겨있는 실존하지 않는 자금인 셈이다.

오일체인지를 하면 차 점검을 공짜로 해준다고 해서 혹했다가 결국은 970달러를 냈을 때도 난 900달러를 비자금에서 충당했고, 뉴욕 지하철에서 남편이 선뜻 20달러를 걸인에게 주었을 때도 15달러를 비자금에서 빼냈다.

이렇듯 금전적으로 부당하게 바가지를 썼다고 여겨질 때나 분에 넘치다 싶게 지출을 했을 땐 마음속에만 담겨 있는 비자금을 슬며시 넘겨본다. 하지만 비자금을 항상 축내는 것만은 아니다.


15년째로 아직도 건강하게 25만 마일을 줄곧 달려온내 차 덕분에 3만달러를 비자금에 가산시켰다.

나의 비자금은 심리적인 치유를 해준다. 모든 일에 꼭 이겨야 한다는 욕심을 덜어주고 때로는 손해를 봐도 괜찮다는 여유를 갖게 해준다. 지는 듯이 사는 것이 결국은 이기는 삶이라는 걸 깨닫는 것이 나이와 함께 오는 지혜이기도 하겠지만 정신적인 여유를 갖게 해주는 나의 비자금 역할 또한 크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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