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로우 - 타운 한 바퀴 걷는데 1시간… 인간이 사는 최북단 마을
▶ 페어뱅스 - 1년에 40만명 관광객 찾아… 오로라 감상지로 최적 장소
【알래스카(상) - 배로우·페어뱅스】
■ 세상 꼭대기 마을 배로우(Barrow)
LA 등 대도시 일상이 지겨울 때문득 ‘낯선 세상’에 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먹고 사는 문제로 마음까지 뒤숭숭하면 존재론적 물음도 던진다. 온전히 자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 연인이나 부부가 서로를 소중히 되새기는 곳, 고립됐기에 살고 싶다는 본능을 깨닫는 장소가 아메리카 대륙에 존재한다.
알래스카 최북단 배로우(Barrow),LA에서 북쪽으로 2,945마일 날아가면 된다. 지구본을 놓고 보면 아메리카 대륙 최북단 땅끝마을이다. 북극권 안에 둥지를 툰 세상 꼭대기 마을(Top of the World) 배로우는 사람이 무엇인가를 삶으로 증명한다.
이곳은 1년 내내 추운 겨울이다.
12월과 1월 사이 30일 이상 캄캄한 밤, 7~8월에는 30일 이상 환한 낮이계속되는 신비한 타운이다. 여름철 24시간 백야는 신비감을, 겨울철 24시간 어둠은 본능적 두려움을 자극한다.
LA나 뉴욕에서 배로우까지 날아가는 여정 자체만으로 인생의 소중한 경험이다. 원주민어로 ‘거대한 땅’이란 알래스카는 설렘을 자극한다.
앵커리지 국제공항에서 배로우 윌리 포스트-윌 로저스 메모리얼 공항(Wiley Post-Will Rogers Memorial Airport)까지 비행시간은 약 2시간30분. 비행기에선 알래스카 남북으로 펼쳐진 웅장한 자연경관을 볼수 있다. 알래스카 유전 호황의 심장인 북단 프르드호 만에 착륙한 뒤 서북쪽으로 200마일을 더 날아간다. 이때 창문 밖으로 하늘과 맞닿은 북극해가 펼쳐진다. 지구는 둥글다는 수평선과 푸른 밤하늘 같은 우주가 만나는 지점에 새하얀 유빙들이 둥둥 떠다닌다. 낯선 세상이다.
인구 약 4,400명이 모여 사는 배로우는 육로와 해로가 없는 세상 꼭대기 땅끝마을이다. 대륙으로 향하는 툰드라(태초의 자연으로 나무도 산도 없다) 지대는 200마일 이상 펼쳐진다. 겨울엔 혹한의 추위로, 여름엔 크고 작은 수천여 습지대가 사람 발길을 막아선다.
배로우 시내는 동서남북 2~3마일 규모다. 타운을 한 바퀴 걷는데 1시간이면 충분하다. 배로우 택시기사에게 50달러를 쥐어주면 배로우 타운 전체를 친절히 소개해 준다. 북쪽 해안을 따라 약 10마일 가면 포인트 배로우(Point Barrow)가 나온다. 이 길목에는 지구상 인간이 집단을 형성하고 사는 최북단 도시임을 알리는 ‘Top of the World’ 표지판이 원주민들이 잡은 북극고래(Bowhead Whale) 머리뼈에 둘러싸여 있다.
북극해가 시작되는 포인트 배로우나 배로우 해변을 걷다보면 묘한 감정이 밀려온다. 저마다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간다. 새삼 ‘인생이 무엇인가’를 되묻게 된다. 잔잔한 북극 바닷가를 관광객 한 두 명이 걷고 있다.
배로우 여행은 이삼일이면 충분하다. 북극권 작은 땅끝마을로 황량함과 신비감을 담고 있다. 이누피엣 헤리티지 센터 방문과 북극 해변가 포인트 배로우 산책은 필수다.
한인들이 운영하는 식당 노던 라이트(Northern Lights), 오사카(Osaka),샘&리(Sam&Lee’s), 아틱 피자(Artic Pizza), 배로우 키친(Barrow Kitchen)은 꼭 찾아가보자. 북극 엄동설한을 피하려 들어간 식당에서 “안녕하세요”란 인사가 참 반갑다.
숙소는 탑오브더호텔(907-852-3900)·킹에이더인(907-852-4700)·에어포트인(907-852-2525)로 직접 예약하면 된다.
# “세상 곳곳을 여행할 거예요”
배로우는 1년 내내 겨울로 여름철에만 화씨 50~60도를 기록한다.
추위에 모자를 눌러쓰고 손이 시렸지만 이누피엣 원주민 어린이들은 자전거를 타거나 놀이터에서 뜀박질을 했다. 배로우 공항에서 원주민 성인을 만나는 순간 ‘몽골사람?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데 3~5세 동네 아이들에게 ‘안녕’하고 인사를 건네며 얼굴을 마주친 순간 다소 놀랐다. 아이들은 한국 시골마을 어린이란 착각이 들 정도로 생김새가 비슷했다. 그들이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했다면 여기가 한국인지 알래스카 최북단인지 헷갈릴 정도.
노던 라이트 식당 백필현 사장은 “우리랑 똑같아요. 여기 사람들 애 낳으면 몽고반점 있다니까”라며 동질감을 표했다.
배로우 아이들은 하루 24시간을 신나게 뛰논다. 백야인 여름철엔 한인 운영 식당을 찾거나 집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논다. 자정을 넘어 샘&리 식당에서 만난 이누피엣 청소년들은 낯선 사람의 질문에 호기심을 보였다.
고등학생인 레이넬 오페하(17)는 앵커리지는 여러 번 가봤지만 알래스카 밖은 나가보지 못 했다며 바깥세계를 궁금해 했다. 아바 라잇(20)은 “우리 동네 사람들은 겨울에 LA나 하와이로 놀러다닌다”며 세상을 안다는 눈빛이다. 아리아 라벳(13)과 에블린 아타바로(17)는 학교에 한인 학생이 있지만 잘 알지는못 한다고. 오페하는 유독 호기심이 강했다. 그는 “어른이 되면 대학도 가고 해병대에 지원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고 싶다. 사회시간에 우리 조상이 시베리아에서 왔다고 배웠는데 한인이랑 우리가 비슷한 이유 아닐까”라며 웃었다.
■황금도시 페어뱅스(Fairbanks)
앵커리지에서 배로우를 오가는 비행기는 내륙 도시 페어뱅스를 들렀다 갈 때가 많다. 페어뱅스는 알래스카 내륙 중앙에 위치한 인구 3만여명의 소도시다.
사방을 둘러싼 자작나무 산맥 덕분에 분지형 도시는 평화롭고 아늑하다. 이곳 알래스카 내륙 소도시를 찾는 관광객만 1년에 40만명으로 북극권(북위 66.3도) 경계지란 특색을 자랑한다.
페어뱅스는 한인 관광객에게 ‘치나온천과 오로라’로 유명하다. 도심 북쪽에 자리한 치나 온천은 1년 내내 유황온천이 흐른다. 한국, 일본, 중국관광객들도 여름과 겨울을 막론하고 페어뱅스의 자연을 즐기러 찾아온다.
금광으로 시작된 페어뱅스는 알래스카 북극해와 동쪽 캐나다 국경, 남쪽 앵커리지를 잇는 교통 중심지로도 유명하다. 여름은 녹음이 짙고 겨울엔 북극권 오로라 감상지로 최적의 장소다. 매년 3월 열리는 눈꽃얼음축제와 개썰매 대회는 내륙도시에 활력과 낭만을 불어넣는다.
특히 페어뱅스는 내륙 원주민과 이주민들의 삶을 잘 간직하고 있다. 페어뱅스 도심을 흐르는 체나강(Chena River)을 오가는 ‘리버보트 디스커버리’(riverboatdiscovery.com)호는 관광객이 페어뱅스 100년 역사와 삶을 한눈에 체험하도록 돕는다.
약 3시간 동안 체나강을 오가는 디스커버리호를 타면 원주민 민속촌, 개썰매 훈련장, 연어 수확장, 페어뱅스 전경, 수상비행기 이착륙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소도시 사람들이 어떻게 내륙 깊숙이 들어왔고 삶을 꾸려 가는지 자연스레 이해가 된다.
도심에 자리한 페어뱅스 골든하트 공원(Golden Heart Park), 알래스카대 노스 뮤지엄(UA Museum of the North), 파이오니어 공원(Pioneer Park), 모리스 탐슨 문화센터(Morris Thompson Cultural & Visitor Center)는 알래스카 내륙인들이 외로움을 이겨내며 그들만의 꿈을 향해 살아온 흔적을 잘 담아놓고 있다.
알래스카 페어뱅스에서 북단 프르드호 만으로 연결된 비포장 도로(11번)는 5~10월 왕복이 가능하다. 인적이 거의 없는 태초의 자연 앞에 사람이 고스란히 노출되는 셈이다.
▶취재협조: 앵커리지 관광청(www.anchorage.net), 페어뱅스 관광청(explorefairbanks.com)
<글·사진 = 김형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