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명훈씨 같은 경우 (이종열 / 페이스대 석좌교수)

2015-10-09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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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명한 칼럼니스트 조지 윌이 언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미국의 모든 남성은 실패한 야구선수들이다.”

미국에 오래 살아온 남자들은 무슨 뜻인지 금방 이해한다. 미국의 모든 소년들은 야구를 하면서 자라게 되므로, 실제 이들 모두에게 한 번씩은 다 직업야구선수가 될 기회가 오는 셈이다. 메이저 구단의 스카웃 담당자들이 전국 야구클럽을 섭렵하다시피 하니까 재능 있고 동네나 학교에서 뛰어난 실력이라고 소문난 경우, 그 뒤 잘 풀려 메이저 리그에만 들어갈 행운이 따르면 명성과 재산이 한꺼번에 얻고 동네에서 가장 예쁜 아가씨를 애인으로 삼을 수 있으니 흑, 백, 라틴, 동양계 할 것 없이 모든 젊은 남자들의 우상이 성공한 야구선수들이다.

또 하나 사람들이 지나치고 보지 못하는 것 중에 야구선수가 되면 가질 수 있는 특권이 있는데, 아무리 바람을 피워도, 정치인 경우에는 사망신고가 될 분방한 여자관계가 싱글로만 있으면 전혀 커리어에 부담이 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양키스 구단의 인기 주장 선수였던 데릭 지터를 보라. 유명한 젊은 여성 인기연예인치고 그와 염문이 없는 여성이 드물 정도로 그의 여성편력은 번잡한데 그것이 도리어 그의 이력서에 매력이 되어있지 않은가. 아무도 그에게 깨끗한(?) 행동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이 같은 특별한 경우가 해당되지 못하는 99프로의 우리 보통 사람들은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명제에 붙들려 평생을 힘들게 살아야한다. 평생을 살면서 공짜는 별로 없고, 자기가 노력한 만큼 실적이 따르거나 결실을 맺고, 행동도 평생 조심조심하지 않으면 오랜 시간 걸려 이룩한 것이라도 한순간에 모든 걸 잃기가 십상이다.

언젠가 정명훈씨의 누님인 정경화씨가 자신의 피눈물 나는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성장과정을 얘기하면서 당시 유명해져있던 아이작 스턴에게서 구박받은 얘기를 잠시 비친 적이 있는데, 아이작 스턴만이 아니라 사실 여러 유명 오페라 가수나, 지휘자, 연주자들의 일상에서의 도를 넘는 수준의 오만과 탐욕은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예술과 음악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이 고마워서 그런 사소한 얘기들은 넘겨듣는 게 일상화 된 것이다. 그들에게 우리는 상당한 수준의 혜량을 베풀 준비가 되어있다.

서울 시향 예술감독으로 귀국한 뒤 연주수준을 괄목하게 향상시킨, 피아니스트로서, 지휘자로서, 한국의 자랑인 정명훈씨가 요즘 관료적인 삐걱대는 에피소드 사이에서 여러 구설수에 휘말린 미디어 보도를 읽었다. 보도내용들을 아무리 보아도 세계적 명성을 가진 그의 배경에 어울리지 않는, 도를 넘치는 과오를 한 것 같지는 않은데, 관료들과 직업경영인들의 보통사람 눈으로 보아 이것도 저것도 마음에 안 드는 일탈을 미디어에서 까발려 놓은 것이다.

경영효율을 따지는 직업경영인이거나 서울시 관리들의 눈으로 보아 마음에 안 드는 일이라고 그렇게 따지고 들면, 세계적 수준의 한국출신 예술가들을 한국에 유치하기가 힘들어진다. 정명훈씨 미디어 보도를 접하며 맨 먼저 든 걱정이 이러다간 그가 한국에서 못 견디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정명훈씨만 아니라 해외에서 유명해진 각계 인재들을 한국에서 데려간 경우 길어야 몇 년, 짧으면 1년 안에 그들이 한국에서 정을 떼고 떠나오는 걸 꽤 보아왔다. 이런 인재들을 데려오려면, 또 그들이 오래 고국에 공헌하도록 하려면, 오래전 해외에서 활약하는 한국출신 유명 과학자들을 고국에 부르려, 친필로 편지를 수없이 쓰고 개인적으로 공을 들였던, 조국중흥의 꿈을 가졌던 어느 전직 대통령 같은 강력한 지도자의 뒷받침이 있어야한다.

한국, 해외에서 오래 살다가 가서 쉽게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질긴 잡초 같은 근성 없이는 살아남기 힘들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국내에 돌아가서 금융계에서 활약하는 대학후배가 한 얘기가 생각난다. 정치인 출신들과 위원회 같은 걸 해보면 그들은 절대 중요한 일을 맡지 않는다는 것이다. 뒤에 잘못되면 책임질 일이 생기니 한직처럼 보이는 일만 맡는데, 놀라운 것은 정치인 출신들이 맡는 일들은 한결같이 ‘떡고물’이 많이 생기는 걸 뒤에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특출한 감각을 가진 정치인들 사이에서 살아남은 관리들은 이보다 더 영리해서, 해외에서 귀국해 뉴스를 타고 자리에 앉는 인재들은 관리들과의 경쟁에서 백전백패라는 것이다. 고국으로부터 정명훈씨 뉴스를 들으면서 한국의 장래에 대해 마음이 별로 밝지가 못한 하루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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