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고비아 / Robyn Sarah

2015-10-01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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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고비아 / Robyn Sarah

고필종 ‘창살’

기타리스트들은
지하실 방에 모여 앉아
손톱에 관해 논하곤 했다.
손톱의 길이를 비교하고
손톱의 강도에 대해 소소히 이야기하고
부러진 손톱에 얽힌
끔찍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었다. .
한쪽 손의 손톱만 길고 너덜너덜 한 것,
그것이 증거였다. 그들이 바로 그 부류라는 것.
줄리안 브림의 콘서트 티켓을 살 돈이 없고
기타 레슨을 받을 수도 없었지만
레코드는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악보, 음악을
귀로 듣고 오선지에
열정과 정성을 다해 하나 하나
인도 잉크로 손으로 적어내린 그 악보들
그렇다, 그들에게는
외전(外典)과, 구전(口傳), 그리고
영웅들이 있었다.
세고비아도 독학했었다.


/Robyn Sarah ‘세고비아’ 전문 (임혜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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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의 예술가들은 미래를 열어가는 모험가들이며 개척자들이기도 하다. 기타를 음악 장르로 안주시킨 거장, 안드레스 세고비아도 어렵게 독학으로 세계 최고의 기타리스트가 되었다. 음악회에 갈 돈이 없고 레슨도 받을 수 없는 가난한 음악가들은 지금도 여기 저기서 꿈을 키우고 있다. 정통파보다 아웃사이더가 더 멋지지 않은가. 귀로 듣고 손으로 그린 악보로 연습에 열중인 이들. 세상엔 돈이나 명예나 권력보다 큰 무엇이 있다. 그것이 바로 사랑과 열정이다.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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