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귀여운 히어로, 유쾌한 스펙터클

2015-09-0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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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트맨’]

마블 히어로 무비는 전환점을 맞았다.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감독 조스 웨던)을 끝으로 새로운 어벤져스가 결성됐고, 기존의 어벤져스 멤버는 각자의 길을 갔다. 하지만 시리즈는 남아있다. 당장 내년, 영웅들 간의 대립을 그리는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가 개봉하고, 2018~2019년에는 ‘어벤져스:인피니티 워’ 1, 2편이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는 점점 확장하는데, 아이언맨·헐크 등 원년 멤버로는(‘어벤져스2’를 기점으로 몇몇 새로운 히어로가 등장했지만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더이상 극을 이끌어 갈 동력이 생기지 않는다. 결국 방법은 히어로의 문어발 다각화. 솔직하게 말하자. 마블의 새 히어로 영화 ‘앤트맨’(감독 페이튼 리드)은 마블 세계의 양과 질의 확장을 위해 ‘투입된’ 작품, 더 정확히는 소품이다.

하나뿐인 딸에게 멋진 아빠가 되고 싶지만, 현실은 생계형 도둑인 스콧 랭. 감옥에서 출소 후 올바르게 살겠다고 수없이 다짐했지만, 결국 생계를 위해 어느 노인의 집을 턴다. 하지만 랭이 집어 든 건 알 수 없는 수트 한 벌. 이 수트는 사실 몸을 자유자재로 늘리거나 줄일 수 있는 핌 입자를 활용한 옷이다. 이 수트를 개발한 과학자 행크 핌은 랭에게 ‘’앤트맨’이 돼 달라고 요청하고, 랭은 얼떨결에 핌 박사의 제안을 수락한다. 랭은 핌 박사와 그의 딸인 호프의 도움을 받아 점차 히어로의 면모를 갖춰가고, 핌 입자를 악용하려는 세력과 맞서게 된다.


’앤트맨’은 분명 더 커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큰 그림을 위해 도구로 활용된 영화다. ‘앤트맨’은 폭스(FOX)가 만든 작품이 아니다(리부트 ‘판타스틱4’의 절망적인 연출을 보라). 이 영화는 뛰어난 완성도로 대부분 시리즈를 성공시킨 마블의 영화다. 마블은 이번에도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영화는 원작을 군더더기 없이 각색하고, 보통 크기 인간의 몸에서 1.27㎝의 작은 신체로 변화하는 앤트맨의 모습을 리드미컬한 편집으로 담아낸 뒤, 아기자기한 액션 시퀀스를 적절히 배치한다. 여기에 스트라이크존을 가리지 않는 제구력의 성공률 높은 유머를 장착했다.

‘앤트맨’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유머다.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마블 히어로 무비이지만, 최근 이 영웅들의 대화는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심각해져 왔다(‘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상대적으로 우울한 분위기를 떠올려보라) 하지만 ‘앤트맨’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한 영화다. 극의 분위기를 짐작케 하는 단서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나온다. 마블의 영화는 언제나 코믹스의 책장이 넘어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장중한 음악과 함께. ‘앤트맨’도 이 장면과 함께 시작한다. 다른 건 음악이다. 마이애미 해변을 떠올리게 하는 경쾌한 보사노바가 깔리는 것.

가벼운 말장난에서부터 슬랩스틱, 몸이 작아졌을 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빠른 편집 안에 담겨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또 힘은 세지만, 크기는 작은 영웅의 모습을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과 비교해 보여줘 이전의 영웅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귀여운 느낌을 끌어낸다. 장난감 토마스 기차 철로 위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영웅이라니! 랭의 감방 동기 팩스턴의 활약도 눈여겨봐야 한다.

‘어벤져스’ 시리즈가 보여줬던 지상 최대 스펙터클의 액션을 ‘앤트맨’에서 기대하는 건 무리다. 다시 말하지만, 앤트맨은 1.27cm에 불과하다. 대신 이 영화에는 지상 최소의 스펙터클이 있다(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물이 ‘앤트맨’에서는 마치 해일처럼 느껴지니까). 앤트맨이 탄생한 이유는 기존의 영웅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곳에 침투하기 위해서다. 일종의 첩보전과 같은 액션이 ‘앤트맨’에서 펼쳐지는데, 각종 컴퓨터 시스템을 작은 몸, 빠른 속도로 누비고 다니면서 미션을 수행하는 앤트맨의 모습은 관객에게 잔잔한 재미를 준다. 개미를 활용한 액션, 몸의 크기를 변화시키면서 전투를 하는 앤트맨 특유의 백병전 또한 소소한 즐거움을 준다.

물론 이 영화의 스토리 라인은 정교하지 못하다. 마블이 최근 작품들에서 보여준 이야기의 완성도, 특히 ‘캡틴 아메리카:윈터 솔져’와 비교하면 ‘앤트맨’의 서사에는 빈틈이 많다. 그러나 새 프랜차이즈 히어로 시리즈의 시작으로 이 영화의 이야기는 눈감아 줄 만하다(‘퍼스트 어벤져’와 ‘토르:천둥의 신’을 떠올려 보라. 그리고 ‘판타스틱4’를 생각해 보라).

영화가 끝나도 일찍 자리를 뜨지 말 것. 두 개의 쿠키영상이 준비돼 있다. 앤트맨의 파트너 ‘와스프’의 탄생과 앤트맨의 앞으로의 행보를 알 수 있다. 구미가 당기지 않더라도 ‘앤트맨’은 봐야 할 것이다. 이제 마블 히어로 무비는 매 작품을 챙겨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손정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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