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뉴욕의 이웃사촌 (한태격 / 뉴욕 평통위원)

2015-09-01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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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오래 판촉물 제작 사업을 해왔다. 그렇다고 물건만 팔고 이윤만 챙기는 그런 사업가는 아니다.

3년 전의 일이다. 그때 대선으로 한국에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였다는 이야기를 단골들에게 전했더니 축하한다면서 각자 자신의 업소에 축하 현수막을 올리거나 포스터를 붙이겠다고 했다. 그런 식당이 이탈리안 식당, 스페인 식당, 그리스 식당, 이탈리아 피자집 등 열 곳이 넘었다. 디자인은 필자가 조언하여 주었지만, 모든 비용은 그들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플러싱 인근 빌라지오 이탈리안 레스토랑도 그 중 하나였다.

다른 비즈니스 업주들처럼 빌라지오의 주인 조우와도 형제처럼 가깝게 지낸다. 플러싱 점을 비롯해 모두 4곳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명함에서부터 유니폼 그리고 바닥 매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판촉물 주문을 필자에게 몰아준다. 심지어 이탈리어로 쓰여진 메뉴판까지 제작 의뢰한다. 덕분에 스페인어와 비슷한 이탈리어를 익힐 기회가 있었다.


그가 지난 12월 새로 문을 연 스페인 식당에는 조그마한 무대가 설치되어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주말이 시작되는 목요일에 공연이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 수위 가운데에는 가끔 밤늦은 시간이면 마치 세계적인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처럼 밤하늘을 향해 홀로 노래를 읊조리는 코믹한 사람이 있다. 예순은 족히 되어 보이는 남미계다. 예사롭지 않아 “호세, 당신 노래 프로급이다”하고 칭찬을 했더니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왕년에 맨하탄 46가에 있는 그라나다 레스토랑 전속밴드 멤버였어.”그러면서 ‘룸바 도스(Rumba Dos)’라고 쓰여진 CD한 장을 건내 주었다. CD에 들어있는 음악은 가히 수준급이었다.

그 CD를 이탈리아계인 조우에게 건네주었다. 2-3개월이 지났을까, 지난 달 조우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가 소개시켜준 호세를 자기 식당 스테이지에 세우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지난 27일 오후 7시부터 시작된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베사메 무초’ ‘마이 웨이’ 등 우리 귀에 익은 곡들이 3시간 반이나 이어졌다. 테이블이 부족하여 입장하지 못한 고객들까지 있었다.

남미 대륙 에콰도르 출신 악사를 이탈리아계 주인에게 소개하여 스페인 식당에서 노래하게 한 코리안 비즈니스맨의 역할에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공연 다음 날 조우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9월 공연을 알리는 현수막에 대한 주문이었다. 9월 현수막에도 제일 위에 출연진 ‘Rumba Dos’ 를 써넣어 달라고 했다. 레스토랑 고객의 반응이 좋아 그도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9월 무대에도 다시 세우려는 것을 보면..

얼굴색과 언어는 틀려도 실력만 갖추고 있으면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곳이 뉴욕이다. 200여개 민족이 공존하는 뉴욕에서나 가능한 재미있는 이웃사촌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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